발터 베냐민, ‘유대신학적 유물론’이 만든 사유의 풍경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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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연구'는 독문학자 최성만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발터 베냐민(1892~1940) 연구 논문 모음이다.
지은이는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베냐민의 미메시스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평생을 베냐민 연구에 바쳤다.
유대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가 중첩된 시선으로 역사와 세계를 보는 것인데, 이런 이중성에서 빚어지는 긴장이 베냐민의 독특한 사유의 풍경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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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연구
최성만 지음 l 인디북스 l 3만5000원
‘벤야민 연구’는 독문학자 최성만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발터 베냐민(1892~1940) 연구 논문 모음이다. 지은이는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베냐민의 미메시스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평생을 베냐민 연구에 바쳤다. 2007년부터 ‘발터 벤야민 선집’(길, 총 15권) 기획과 번역을 주도하고 있다. 2020년에는 ‘유럽인문아카데미’에 창설 회원으로 참여해 베냐민을 강의해왔는데, 이 저작은 이 아카데미 강의에 사용하려고 그동안 발표한 베냐민 연구 논문을 선별해 묶은 것이다.
이 책에는 베냐민의 주요 개념들에 대한 사전식 소개를 비롯해 미메시스론, 인간학적 유물론 같은 주요 이론을 살핀 논문들이 포함돼 있다. 또 지은이는 근년에 들어와 천도교종합대학원에서 서양 인문학과 동학-천도교의 가르침을 종합하는 연구도 병행하고 있는데, 이 책에는 베냐민의 ‘침잠’ 개념과 동학의 ‘수심정기’를 비교하는 글도 실려 있다.
이 책의 서장에 해당하는 ‘발터 베냐민의 생애와 사상’은 베냐민이 어떤 인생 경로 위에서 어떤 문제의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켰는지 개관할 수 있는 베냐민 약전이다. 베냐민은 베를린의 유복한 유대인 집안에서 자랐는데, 베냐민이 40대에 쓴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은 이 유년기를 회고하는 책이다. 이 회고에서 베냐민은 역사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능력을 점차 상실해 가는 시민계급(부르주아계급)의 모습을 부각한다. 성년이 된 베냐민은 자신이 속한 계급의 도덕적 위선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새로운 청년문화운동에 뛰어든다. 이 시기에 베냐민의 관심은 “위기에 처한 유럽문화를 유대 정신으로 완성하고 구제하는” 데 있었다. 유대 정신으로 유럽문화를 구원한다는 이 생각은 생의 마지막까지 끊기지 않은 베냐민 사상의 저류가 된다. 그러나 베냐민은 유대 정신 자체를 주제로 삼아 탐구하지도 않았고, 유럽문화를 쓸어내버려야 할 낡은 것으로만 보지도 않았다. 베냐민 사유의 길은 이 유대 정신과 유럽문화 사이에서 이 둘을 아우르는 제3의 길이었다. 후년에 정치적 좌파로 기울었지만 이때에도 사유는 교조적이지 않았고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을 잃지도 않았다. 또 초기의 신학적 태도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렇게 정통 좌파와 결이 달랐기에 베냐민은 자신을 ‘좌파 아웃사이더’라고 불렀다.
베냐민 생애에 가장 중요한 인물은 1915년에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된 게르숌 숄렘(1897~1982)이었다. 베냐민은 숄렘과 교류하면서 철학·역사·종교·언어의 본질을 놓고 깊이 토론했다. 베냐민에게 숄렘은 베냐민 자신이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못한 유대 사상에 대한 탐구의 정신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뒤에 숄렘은 유대 신비주의 연구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다.
베냐민이 마지막에 도달한 ‘역사유물론’은 “신학적 사유의 극단적 세속화”라는 말로 요약된다. 유대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가 중첩된 시선으로 역사와 세계를 보는 것인데, 이런 이중성에서 빚어지는 긴장이 베냐민의 독특한 사유의 풍경을 이루었다. 베냐민은 1940년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1970년대에 숄렘이 펴낸 회고록 ‘한 우정의 역사: 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는 베냐민이 다시 학문적 주목을 받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친구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 사후에 카프카를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듯이 베냐민에게 유사한 역할을 한 사람이 숄렘이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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