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이 대치하는 휴전선 바깥에도 길이 있다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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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입니다. ()다행히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수고해서 이 선을 넘어가고 또 넘어왔습니다.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이 말은 지난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휴전선)을 넘어 방북할 때 남긴 말이다.
강주원 선생은 "한국 사회에서 남북 관계란 곧 휴전선"만을 의미해왔다고, 남북 교류는 어느 때부터인가 정부가 주도하고, 통제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다른 길도 있다. 이전에 걸었고 여전히 걷는 길이 있다. 그 길을 한국 사회는 간과한다. 남북의 길은 정부 혹은 당국만 만들어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휴전선 바깥의 길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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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멈춤 없는 남북 만남, 돌아보고 내다보는 문화인류학적 조감도
강주원 지음 l 눌민(2019)
“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입니다. (…)다행히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수고해서 이 선을 넘어가고 또 넘어왔습니다.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이 말은 지난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휴전선)을 넘어 방북할 때 남긴 말이다. 그의 말대로 금단의 선,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했다. 때로 옥에 갇히고, 목숨을 잃었다. 백범 김구와 죽산 조봉암이 목숨을 빼앗겼고, 임수경과 황석영, 문익환 목사와 문규현 신부가 감옥에 갇혔다.
최근 북한의 이른바 ‘헤어질 결심, 두 국가론’에 대해 고민하며 ‘압록강의 인류학자’라 불리는 강주원 선생이 펴낸 네 권의 저서를 다시 읽는다. 때마침 이번호 ‘황해문화’ 특집 주제이다. 원고를 읽는 동안에도 쉬이 씻기지 않는 답답한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00년 여름부터 한반도 밖이자 조·중 국경지역인 중국 단둥을 포함해 두만강과 압록강을 수십여 차례 넘나들며 북한사람·북한 화교·조선족·한국사람의 관계맺음을 꾸준히 기록해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 ‘압록강은 다르게 흐른다’, ‘휴전선엔 철조망이 없다’와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를 펴냈다.
“지금은 괜찮다고 할 수 있더라도 북한 연구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남북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은 지난 2019년 한 세미나 장소에서 그가 들었던 충고라고 한다. 실제로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1991년 12월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맺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따르면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한다”고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북한과 임의로 접촉했다는(‘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이유로 다섯 명의 목사에게 각각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기도 했다. 남북관계는 한국의 정권 교체는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변화에 항상 민감한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분단된 국가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취약점이었다.
쉬울 거라 생각한 적은 결코 없지만, 그럼에도 지난 2018년 4월27일, 남북한 정상이 만나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이야기하던 순간은 꿈만 같았다. 시민들은 평양냉면집 앞에 길게 줄을 섰고, 곧 평양에 가보리라는 소망을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오늘 우리는 또다시 “지금 조선반도 형세가 당장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형세라는 북한의 선언을 듣는다. 북한이 예전의 북한이 아니라는 말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톱질하듯 오가는 상황이 끔찍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 침착하게 평화로 가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강주원 선생은 “한국 사회에서 남북 관계란 곧 휴전선”만을 의미해왔다고, 남북 교류는 어느 때부터인가 정부가 주도하고, 통제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다른 길도 있다. 이전에 걸었고 여전히 걷는 길이 있다. 그 길을 한국 사회는 간과한다. 남북의 길은 정부 혹은 당국만 만들어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휴전선 바깥의 길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의 길이다(This is the way).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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