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해하고, 그리워하고, 기다리고…우리가 잃어버린 아날로그의 낭만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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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만 해도 지하철 승객들은 책이나 신문을 보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저 앞을 멍하게 쳐다보면서 하차할 시간만을 마냥 기다려야 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우리가 '지루함'으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갔다.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컴퓨터로 인해 최근 10∼20년 사이 사라진 풍경들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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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
패멀라 폴 지음, 이다혜 옮김 l 생각의힘 l 1만9000원
90년대만 해도 지하철 승객들은 책이나 신문을 보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저 앞을 멍하게 쳐다보면서 하차할 시간만을 마냥 기다려야 했다. 이런 풍경은 아이폰이 출시되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우리가 ‘지루함’으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갔다. 병원 대기실에서도 지하철 플랫폼에서도 공연 시작 전에도 친구를 기다릴 때도 이제 우리는 하릴없이 심심하게 있지 않아도 된다. 특히 옛날 사람들은 삶의 대부분의 순간이 지루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지루함’이라는 단어는 19세기가 되기 전에는 주목받지도 못했는데, 그것은 지루함이 삶의 기본값이었기 때문이었다. 삶은 지루했고, 지루함이 삶이었다. 스마트폰은 ‘심심하다’며 놀아달라고 떼쓰는 아이부터 ‘할 일이 없다’며 외로워하는 노인에게까지 달려들어 그들의 시간을 ‘순삭’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컴퓨터로 인해 최근 10∼20년 사이 사라진 풍경들을 전시한다. 우선 공연표나 비행기티켓을 두고 왔다고 입장이나 탑승이 거부되는 일이 없어졌다. 구남친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죽을 일도 없어졌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새 여친의 얼굴부터 성대한 결혼식 모습과 그 뒤 태어나는 귀여운 딸 아이의 얼굴까지도 알 수 있다!) 소개팅에 나가기 전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밤새 설렐 일도 없어졌고, 소개팅에서 특정 물건으로 자신을 표시하며 서로를 찾을 일도 없어졌으며, 마침내 마주한 상대의 스타일에 까무러칠 일도 없어졌다. 자신이 아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방영 시간을 기다렸다가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는 일도 없어졌다. 아침이면 현관문을 열고 조간신문부터 집어 드는 일도 없어졌다. 손편지도 크리스마스 카드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없어졌다. 학교마다 꼭 한두명씩 있던 책벌레 소년들도 없어졌다. 그리고 그 소년들을 몰래 짝사랑하던 소녀들도 함께 없어졌다.
뉴욕타임스 북리뷰 편집장인 ‘X세대’ 저자는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을 유머러스하게 기록하고 추억한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필치 덕분에 우리는 그 풍경 속에 두고 온 감각과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조간신문의 진한 잉크 냄새와 백과사전의 묵직한 무게감, 손글씨를 또박또박 쓸 때의 긴장감과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직전의 흥분감, 오랜 시간 뒤 구남친 소식을 풍문으로 들을 때의 아련함까지 말이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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