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는 마음, 딱따구리를 만나는 마음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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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자연에 대한 글을 제일 잘 쓰는 작가 로버트 맥팔레인은 열두살 때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에 있는 외조부 댁에서 위대한 등산 이야기 중 하나인 '에베레스트와의 승부'를 읽었다.
산과 마음과 상상력의 관계에 대해 그가 쓴 책 '산에 오르는 마음' 덕분에 많은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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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는 마음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노만수 옮김 l 글항아리(2023)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자연에 대한 글을 제일 잘 쓰는 작가 로버트 맥팔레인은 열두살 때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에 있는 외조부 댁에서 위대한 등산 이야기 중 하나인 ‘에베레스트와의 승부’를 읽었다. 그는 산사나이들의 고초에 매료되었다. 거의 모든 탐험 이야기에는 죽음이나 신체 절단이 나오는데 그는 “살이 물에 젖은 비스킷처럼 뼈에서 쏙 빠져나왔다” 등 오싹한 세부묘사를 좋아했다. 그는 추위로 누런 콧물을 흘리고 손가락은 절단되어도 펭귄을 사랑하고 자연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누리고 말겠다는 태도를 가진 산사나이들을,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산사나이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야생의 풍경에 무슨 매력이라도 있다는 생각은 18세기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산은 지구의 얼굴에 생긴 못생긴 부스럼, 사마귀 딱지, 악령의 서식지였다. 산을 정신적인 차원으로 이해한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황량함, 가파름, 위험함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매력 덩어리가 되었다. 등산은 19세기 중반에 출현했다.
그 뒤로 산은 인류의 상상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숭고함, 아름다움. 강인함, 정복욕. 여기에 자기계발의 논리까지 가세했다.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 같은. 맥팔레인이 보기에 우리가 ‘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의 물질 형태’와 인류의 ‘상상력’이 협력해 구성한 ‘마음의 산’이다. 산과 마음과 상상력의 관계에 대해 그가 쓴 책 ‘산에 오르는 마음’ 덕분에 많은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높은 산꼭대기에서만 볼 수 있다는 노을 알펜글로. 알펜글로는 하늘을 강렬한 붉은 조명처럼 보이게 하는데 이 붉은 노을을 본 사람은 틀림없이 큰불이 났고 그곳은 불지옥일 것이라고 짐작한다는 것이다. ‘대체 왜 산에 오르는 거야?’에 대한 대답으로는 이 문장이 좋을 것 같다. “심원한 시간을 관조하는 것에는 기묘하게도 사람의 기분을 북돋는 짜릿한 무언가가 있다. 그렇다. 당신은 이 광대한 우주의 대계획에서 획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작은 빛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동시에 ‘당신도 존재한다’는 깨달음으로도 보상을 받는다. 우리는 매우 작기 때문에 흘깃 본다면 존재하지 않는 듯하지만 실은 확실히 존재한다는 실상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읽다 보면 산이 인류의 상상력에 정말 중요한 곳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상상력이란 뭘까? 뭐길래 인류의 마음에 그처럼 자주 빛과 그늘을 드리우고 인생을 뒤흔드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도 산에 대해서 새로운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딱따구리 보전회’라는 단체가 생겼다. 나는 딱따구리가 이마나 부리가 피투성이가 되지 않고 어떻게 나무에 구멍을 내 둥지를 만들까 내심 궁금했었는데 이제 풀렸다. 딱따구리는 노쇠한 나무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이다. 딱따구리가 뚫어놓은 둥지는 다른 많은 동물도 이용하기 때문에 숲의 다양성이 높아진다. 딱따구리는 나무를 쪼아서 나무의 죽음과 순환을 돕고 토양을 튼튼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기후위기에는 순환이 잘되는 숲이 필요하고 딱따구리는 그 순환의 연결고리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딱따구리라는 단어 하나가 마구 확장되어 커다란 숲을 상상하게 한다. 딱따구리는 내 마음속에서 미래를 위한 기쁜 상상력의 단어가 되었다. 마침 ‘딱보랑 남산나들이’ 답사행사가 다음달 8일 열린다. 나의 ‘산에 오르는 마음’은 단순하다. 딱따구리가 보고 싶다. 딱따구리가 있는 초여름 숲을 벌써 상상하게 된다. 그 풍경의 일부가 되면 너무 신기하고 기쁠 것 같다.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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