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에서] 사막에는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이상희 기자 2024. 5. 24. 05: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건강권'이라는 것이 있다.

10곳 가운데 7개 농촌마을 주민들은 식료품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식품사막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식품사막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편리의 문제가 아니다.

농촌의 식품사막 문제를 농촌주민의 건강권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건강권’이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건강하게 살 권리다.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 헌장, 세계인권선언 등 다수의 국제 규약에서 인간의 기본권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35조에도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반드시 지켜져야 할 기본권이라는 뜻이다.

최근 우리나라 농촌지역의 ‘식품사막화’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식품사막은 식품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을 일컫는 용어다. 우리나라는 아직 합의된 정의가 없지만 참고할 만한 자료는 있다. 행정리, 즉 마을 내 식료품점의 유무를 따져 보는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행정리 중 73.5%에 식료품점이 없다. 10곳 가운데 7개 농촌마을 주민들은 식료품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식품사막에 살고 있는 것이다.

불편하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식품사막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편리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의 문제고 생존의 문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단백질, 지방 등을 고루 섭취해야 하는데 이를 포함한 식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선한 과일, 신선한 육류, 유제품 같은 양질의 식품을 먹을 기회는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구하기 쉽고 보관이 용이한 가공식품 위주의 식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영양 상태가 불균형해지기 쉽고 질병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실례로 호주 시드니대학교가 당뇨병으로 인한 조기 사망자의 지역별 비율을 지도에 표시해 비교한 결과 사망률이 높은 지역과 식품사막 지역이 거의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 식품사막 지역 주민들이 비만은 물론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다른 여러 연구결과에서도 증명된 바다.

우리나라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질병관리청이 매년 시행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농촌지역인 읍·면에서 영양섭취 부족 상태인 주민 비율이 20.4%였다. 식품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좋은 도시지역에서는 16.2%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농촌 고령층의 상황은 더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대한영양사협회 학술지에 최근 게재된 자료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식생활 실태를 조사해 상중하로 구분한 결과 도시 거주 고령자 중 하위군에 포함된 비율은 29.8%인 데 비해 농촌 거주 고령자는 42.3%에 달했다. 농촌지역 고령자들의 육류나 과일, 유제품 섭취가 권장 섭취량보다 부족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농촌의 식품사막 문제를 농촌주민의 건강권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보다 일찍 이 문제를 대면한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식품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드는 작업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4억달러를 들여 식품사막 지역에 신선식품 등을 판매하는 식료품 소매점을 열 경우 세금을 감면해주는 정책을 시작했다. 뉴욕시는 신선식품을 싣고 식품사막 곳곳을 찾아가는 그린카트프로그램(green cart program)을 시행했다. 우리나라 일부 지역농협들이 운영하고 있는 이동장터와 비슷한 것으로, 2022년 기준 1000개의 그린카트를 운영해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도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농촌 주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사막에는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이상희 전국사회부장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