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난망이지만 절박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법 제정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 2024. 5. 2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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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규 원자력연구원장

제21대 국회가 다음주에 폐원한다. 이에 따라 국회에 계류된 여러 법안 중 하나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특별법안도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 법안은 국내 각 원전에 저장돼 있는 사용후핵연료의 안전관리를 위한 제반 규정과 로드맵을 정하기 위한 것이다. 이 법안에 대한 여당과 야당의 초안에는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의 용량 등 몇 가지 쟁점에 이견이 있었으나 조율을 통해 합의통과가 가능한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었다. 약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 법안통과에 대한 긍정적 보도가 이어졌으나 최근 정치상황이 변하면서 계류가 계속됐다. 폐원일이 1주일도 안 남은 현재 통과는 난망이다. 이 법의 제정이 계속 지연되면 정상가동 중인 몇 기의 원전을 정지해야 하는 비상사태가 수년 안에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전력대란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2020년 기준(국가에너지통계 최신 자료) 92.8%다. 여기서 수입되는 우라늄 연료비가 발전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은 원자력을 국산으로 간주하면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81.1%로 낮아진다. 이렇듯 원자력은 국가 에너지안보 증진에 크게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저비용으로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함으로써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국민생활에 큰 활력을 제공해왔다. 원자력은 장차 탄소중립 시대 도래와 AI 이용급증으로 인한 전력수요 증가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계속 이용하고 나아가 확대해야 한다.

원자력을 계속 이용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사용후핵연료 안전관리다.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로 취급된다. 사용후핵연료는 방사능 준위가 높아 방사성 붕괴로 발생하는 열은 충분히 식혀줘야 할 만큼 상당하다. 그래서 원자로에서 빼낸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내 수조에 넣고 5년 이상 열을 식힌다. 이렇게 냉각된 사용후핵연료는 금속이나 콘크리트로 제작된 용기로 방사선을 차폐하고 공기로 냉각하는 방식의 건식 저장시설에 보관하면 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원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수로 원전은 건식 저장시설이 없어 사용후핵연료를 모두 수조에 보관한다. 2023년 말 기준으로 약 1만8600톤의 사용후핵연료가 원전 내 저장수조에 보관돼 있는데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저장수조가 순차적으로 포화할 전망이다. 건식 저장시설은 설계·인허가와 건설에 최소 7년 정도 필요하므로 수조가 포화될 시점으로부터 그만큼 먼저 건설에 착수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원전정지가 불가피하다.

사용후핵연료의 궁극적인 안전관리 방법은 약 500m 지하 깊은 암반에 영구처분하는 것이다. 그 처분장은 엄밀한 암반특성 조사와 설계과정을 거쳐 건설해야 한다. 그 암반 특성조사에 지하연구시설(URL) 건설과 실험수행이 필요하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특별법안은 원전부지 내 임시 건식 저장시설, URL 및 영구 처분시설의 건설과 운영에 관한 절차와 로드맵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돼야 사용후핵연료 안전관리 절차에 공식 착수하는데 절차착수부터 영구처분장 운용까지는 3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 다수 국가를 비롯한 세계 주요 22개국은 2050년 탄소중립 실현에 필요한 무탄소 에너지원에 원자력을 포함했다. 특히 EU는 택소노미제도를 통해 원자력에 금융과 세제지원을 약속했지만 그 전제조건으로 2050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안전처분에 관한 확고한 이행계획을 조건으로 달았다. 우리나라의 K택소노미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년 뒤 있을지 모를 원전정지라는 비상사태로 인한 전력대란을 피하고 2050년 탄소증립 실현목표를 달성하려면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특별법의 적기제정이 절박하다. 국가 에너지 미래를 위한 국회의 대승적인 결정을 바라며 다음주 마지막 본회의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어본다.(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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