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반도체는 시간이 보조금”… 산단 조성기간 절반 단축
정부가 26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종합 지원 방안’을 만들어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 나서는 국내 업체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한 경제 이슈 점검 회의에서 “지금 세계 각국은 반도체에 국가의 운명을 걸고 산업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금융·인프라·R&D(연구·개발)는 물론, 중소·중견기업 지원까지 아우르는 반도체 산업 종합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산업은행을 통해 17조원을 낮은 금리로 대출해 주기로 했다. 반도체 관련 시설 증설에 나서려는 기업들이 대상이다. 또 1조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반도체 상승 사이클에 올라타려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 중소기업들에 투자하기로 했다. 나머지 8조원은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도로·용수·전력 등 인프라 구축과 연구·개발(R&D)에 쓰인다. 윤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은 시간이 곧 보조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신속한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며 “이번 프로그램 중 70% 이상은 중소·중견기업이 혜택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지원 방안의 핵심은 17조원 규모의 저금리 대출이다. 늘어나는 글로벌 반도체 수요에 맞춰 생산 설비를 늘리려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들도 제때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대출 여력을 높이기로 했다. 정부가 1조7000억원을 출자해 산업은행의 자본금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17조원의 대출 여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통상 산업은행은 출자 금액의 10배가량을 대출해 줄 수 있다. 출자는 공공 기관 주식 등 현물 출자와 현금 출자를 혼합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출자액을 반영할 방침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출자는 내년에 하더라도 올해에도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는 산업은행이 저금리 대출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17조원의 저금리 대출은 반도체에 한정되고, 배터리 등 다른 업종은 제외된다. 삼성SDI나 SK온 등 배터리 기업에 대한 지원 가능성이 일각에서 거론됐지만, 반도체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또 국고와 공공 기관 자금을 합친 8조원을 용지와 전력, R&D, 인력 양성 등 반도체 인프라 구축에 지원하기로 했다. 기업들이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고 글로벌 수요를 따라잡도록 하려는 조치다. 2조5000억원은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도로·용수·전력 등 인프라 비용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댈 비용을 정부가 대신 부담해 기업들의 투자 여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 용인 클러스터 인근 국도 45호선 확장과 송전망 구축 관련 인허가 절차를 대폭 줄여 산업 단지 착공에 드는 기간을 당초 예상인 7년에서 절반으로 단축할 방침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용인 클러스터 관련) 보상 기간과 협의 기간을 반으로 줄여서 2026년 말이면 부지 조성 공사에 착수하고 2028년 말이면 ‘팹(Fab) 1(가장 먼저 지어질 예정인 반도체 공장)′의 부지 조성이 완료돼 공장 건설이 시작되도록 하겠다”며 “2030년 말에는 팹 1 공장이 가동되도록 빠른 속도로 진행해 나가겠다”고 했다.
나머지 5조원가량은 R&D와 이를 위한 인력 양성 투자 비용이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3조원을 정부가 투자했는데, 내년부터 2027년까지 3년간은 5조원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26조원의 지원책과 별도로 반도체 설계용 소프트웨어 구입비 등 R&D 세액공제 대상을 늘리는 등 세제 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인텔 등에 거액의 보조금을 주는 미국과 달리 직접 보조금 정책이 빠졌다는 지적에 대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이 용인 클러스터 조성과 관련해 요청하는 것이 인프라 지원이었다”고 했다. 또 관련 소프트웨어 구입비 등을 세액공제하기로 한 것도 기업들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일종의 ‘간접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날 정부 지원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용수, 도로 등 인프라를 국가가 책임지고 조성하겠다고 한 정부의 발표는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내용”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미국식의 정부 직접 보조금이 대기업 특혜 논란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도 “정부 지원책에 힘입어 계획한 투자들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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