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2만~3만가구 이주, 일정 빡빡… 신도시 재건축 괜찮나
정부가 지난 22일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선정 기준과 개발 일정을 공개한 것을 두고 “총 27만 가구에 달하는 사상 유례없는 재건축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책의 세부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연말 선정하는 최대 3만9000가구가 2027년 철거를 시작으로 10년 동안 해마다 2만~3만 가구씩 이주(移住) 수요가 생기는데, 이로 인한 전·월세 시장 충격을 흡수하는 대책이 너무 부실하다는 평가다. 올해 초 발표했던 1기 신도시별 이주단지 조성 계획은 4개월여 만에 소리 없이 사라졌다. 올해 초 내세운 ‘2027년 착공’이라는 목표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사업 일정을 추진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소 5곳이라던 이주단지, 주민 반발에 백지화
정부는 올해 초 1·10 부동산대책으로 발표한 ‘주택 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 방안’에서 1기 신도시 재건축과 관련해 “2025년부터 신도시별로 이주단지를 한 곳 이상 선(先)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자체와 협의해 이주단지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지난달 시행된 ‘노후 계획도시 특별법’에도 “공공주택 사업을 통해 이주단지를 조성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22일 발표에서 이주단지 관련 내용은 빠지고, “전세 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해 필요하면 신규 공급도 확대한다”는 원론적인 문구만 담겼다.
이주단지 조성이 수개월 만에 논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1기 신도시 주민들의 반대 여론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민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재건축 공사 때 공공 임대주택으로 지어진 이주단지 입주에 거부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주민 의견 수렴도 없이 재건축 이주 대책을 발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공공주택을 활용한 이주단지로 전·월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접근이 너무 안일했다”며 “민간 재건축 사업이 정부가 정한 일정과 계획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작은데, 불필요한 혼선만 부추긴 꼴”이라고 말했다.
2027년 이후로 장기간에 걸쳐 이주 수요를 대비해야 하는 1기 신도시 지자체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정부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인 부지를 풀어주고, 분당과 인접한 광주·용인 등에서 신규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최대호 안양시장도 “지자체 단독으로 마련할 수 있는 이주 대책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세운 ‘2027년 착공’ 가능할까
정부가 제시한 사업 일정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정부는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착공과 입주 시점을 공식화하는 것엔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민간 재건축 사업인 탓에 조합 설립이나 사업시행 인가 등 행정 절차나 주민 호응도에 따라 사업 진척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민생 토론회에서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가 공식화됐다. 올해 11월 선도지구를 선정하면 사업 계획 수립, 조합 설립, 각종 인허가를 마치기까지 2년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 정부는 계획 수립과 인허가를 병행해서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 반응은 회의적이다. 서울에서 가장 큰 재건축 아파트인 강동구 둔촌주공은 6000여 가구가 이주하고 철거까지 2년 반, 그 이후로 일반에 분양하기까지 또 3년이 걸렸다. 1기 신도시 선도지구는 이주 규모가 둔촌주공의 최소 5배 수준이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지구 지정부터 착공까지 통상 10년이 걸리는 재건축 절차를 2~3년 만에 마무리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2개 이상 단지가 묶이는 통합 재건축은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차질을 빚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라고 말했다.
최근 공사비가 치솟은 점도 ‘재건축 속도전’의 걸림돌로 꼽힌다.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재건축·재개발 등 평균 공사비는 3.3㎡(1평)당 687만5000원으로 3년 전(480만3000원)보다 43% 증가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유주들이 고급 주거 단지로의 변신을 기대하는 1기 신도시에서도 조합원 분담금 문제로 사업이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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