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채 상병 사건’과 국방의 미래
정치 이해득실로만 따지면 안돼
청년의 죽음 안타깝지만
안전지상주의가 軍 목표 돼서야
20대 남성 자살률, 산재사망률
둘 다 군대가 훨씬 낮아
군대는 실제로 사회보다 안전
사고 줄이며 안보 지키는 군대로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해병대원 특검법’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이를 둘러싼 정쟁은 여야 간 자존심을 건 대결로 치닫고 있다. 채 상병 사건의 진상 규명과 사법적 정의 실현이 목적이라면 경찰과 공수처의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특검으로 직행할 이유가 없다.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의 수사 참고 용도로 작성한 조사 보고서를 국방부가 처리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오판과 실수가 결국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는 정치적 참사로 키운 것이다. 그러나 이 사안의 처리는 정치적 승부와 정의 실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방의 미래에 미칠 심대한 영향이 더 큰 문제다.
작년 7월 채 상병이 폭우 피해 지역인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순직한 것은 온 국민의 공분과 탄식을 불러일으킨 안타까운 사건이다. 만약 장병들의 안전에 필수적인 구명조끼조차 입히지 않은 채 급류에서 수색 작전을 벌였다면 이러한 무모한 작전에 책임이 있는 지휘관을 엄중 문책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민간 기업이 이런 식으로 안전을 무시하고 위험한 작업에 직원이나 계약자를 몰아넣었다가 인명 사고가 났다면 그 기업의 책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군에서 일어나는 유사 사고에 대해서도 똑같은 기준으로 지휘관에게 과실치사 또는 직무유기 등 혐의로 형사 책임을 묻는다면 정의는 실현될지 모르나 군의 운용과 국방의 미래에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첫째, 군 간부의 자질이 급격히 저하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안전사고나 군기 사고(자살 포함)로 사망한 군인은 연평균 85.4명에 달한다. 민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마찬가지로 안전에 더 노력하고 안전 수칙을 철저히 준수했다면 대부분 피하거나 줄일 수 있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지휘관에게 책임을 물을 여지는 있다. 그런데 가령 안전사고나 군기사고의 3분의 1 정도에 대해 지휘 책임이나 형사 책임까지 묻는다면 사단장이 되기 전에 감옥에 가거나 해임을 당하지 않은 장군이 몇 명이나 남아있을까. 결국 지휘관으로서 자질이 없어도 휘하 부대의 안전사고나 군기 사고로 한 번도 문책당한 적이 없는 장교가 승승장구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 이런 장교들에게 국방을 맡겨도 될까.
사병의 복무 기간 축소와 급여 인상으로 초급장교 충원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학군장교(ROTC)를 운영하고 있는 전국 대학 108곳의 절반이 지원 미달을 겪고 있고, 육·해·공군 사관생도의 자퇴율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휘관이 되는 것이 감옥 입소를 예약하는 것이고, 부하의 안전사고로 유죄판결 한 번 받으면 복역 후 사면받더라도 연금이 절반으로 줄어들 걱정까지 해야 한다면 장교 충원은 앞으로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둘째, 안전지상주의에 빠진 군은 전쟁할 수 없는 나약한 군대로 전락하기 쉽다.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면 안전을 경시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실전 같은 강도 높은 훈련일수록 사고 위험은 높지만 이를 소홀히 하면 유사시 일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더 위험해진다. 군인의 안전이 군의 존재 이유가 되고 지휘관이 안전사고를 막는 데만 전전긍긍하면 국가의 안전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끝으로, 군 내의 안전사고를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정치화하는 것은 군이 유독 인명과 안전을 경시하는 조직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확산시키고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의 불안을 조장한다. 2014~2023년간 안전사고에 의한 군 사망자는 연평균 16.1명으로 1만명에 약 0.3명이다. 이는 민간 기업 산재 사망률 0.98(2023)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군 내 자살률은 10만명당 12.9명으로 20대 남성 자살률 24.5명(2022)의 절반 수준이다. 확률론적으로만 본다면 평시에는 민간 기업에 근무하는 것이 군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 그러나 민간 기업에서 일어나는 사망 사고는 보도조차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한 반면, 군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여론의 과잉 조명을 받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군 안전사고가 정치 쟁점으로 부각될수록 군 생활이 실제보다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고, 병역 의무 이행에 대한 공연한 불안을 확산시킨다.
군 내 안전사고는 정치적 이해 득실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국가 안보를 희생하지 않고 안전사고를 줄일 현실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군은 안전 교육과 훈련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을 근절하고 안전 문화를 선진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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