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밸류업에 큰 기대 말고 속 편하게 미국 주식 사세요”
개인 투자자 미국으로 탈출
힘들어도 난제 극복하겠다는
결연한 정부 의지와 대책 필요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에 큰 기대 걸지 말고 그냥 속 편하게 미국 주식 사세요.”
주식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에게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 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물으면 회의적인 반응이 주를 이룬다.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주 가치를 끌어올린다는 방향은 맞지만, 달성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다는 이유다.
먼저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은 이사회 결정 사항이다. 그런데 국내 상장 기업 이사들은 사내 이사는 물론, 사외 이사까지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대주주 편인 경우가 많다. 상법에도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돼있다. 미국 회사법에 규정된 주주에 대한 성실 의무는 우리 상법에 없다. 이사회가 소액주주 권익까지 챙길 수 있도록 상법을 고쳐야 하는데, 배당을 확대해 봐야 별 실익이 없는 대주주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대주주들이 밸류업에 동참하게 하려면 뭔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방안이 배당소득세 분리과세나 상속·증여세 완화 같은 세제 혜택인데, ‘부자 감세’라는 반대에 부딪히면 한 발짝도 못 나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상충하는 소액주주와 대주주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인데, 서로 이교도(異敎徒) 대하듯 적대시하는 지금 정치권 지형에선 기대하기 어렵다.
극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해 관련 법률 개정에 성공해도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증권가에 뿌리 깊은 한국 증시에 대한 불신이다. 국내 상위권 자산운용사 대표 A씨는 “고객들에게 한국 대신 미국 주식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미국 수익률이 한국보다 월등하게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2007년 말부터 2023년 말까지 16년간 한·미 증시의 수익률을 비교했더니 나스닥 대표 종목으로 구성된 나스닥100 지수가 9.55배로 껑충 뛴 반면, 한국 코스피는 1.43배로 오르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수익률로 비교하면 855%대 43%로 거의 20배 차이다. 100만원을 금리가 연 3%인 정기예금에 16년간 맡기면 세금을 빼고도 원리금이 152만원으로 불어난다. 코스피 수익률이 연 3%짜리 정기예금보다 낮았던 것이다. A씨는 “역사적 데이터로 분석해 볼 때 한국에서 밸류업 정책이 실행되더라도 코스피 수익률이 나스닥보다 높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발 빠른 국내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을 팔고 미국 주식으로 갈아타고 있다. 개인들은 올 들어 지난 21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만 14조원 넘게 순매도(산 것보다 판 것이 많다는 뜻)했다. 작년 연간 순매도액(약 13조8000억원)을 불과 5개월도 안 돼 넘어선 것이다. 한국 증시에서 빠져나간 개인 자금의 상당액은 미국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증권가는 추정하고 있다. 올 들어 서학 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이 7조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작된 개미들의 한국 증시 이탈이 정부가 밸류업을 추진하는 올해에도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클릭 몇 번이면 쉽게 해외 주식을 살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해진 투자 환경에서 한국 증시를 외면하는 투자자들을 탓할 수는 없다.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돈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다만 밸류업 정책이 추진되는 와중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데 대해 정부가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개미들의 탈(脫)한국이 가속화할 경우 주식시장을 통해 국민들의 자산 형성을 돕는다는 밸류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립서비스에 그치지 말고, 힘들더라도 난제(難題)를 극복하겠다는 결연한 정부의 의지와 정교한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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