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마음 心에 관한 마음
물론 햇빛도 빠르지만 빛보다 더 빠른 게 있다. 태양을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착하는 데 8분20초나 걸리지만 사람의 생각은 그 100분의 1인 5초 만에 우주를 몇 바퀴나 돈 뒤 다시 화성의 고리를 어루만지고도 여유가 있다. 어깨 위의 먼지들에게 말해주라, 우리의 두개골은 저 불타오르는 태양과의 달리기 시합에서 언제나 이긴다.
빛은 빠르기가 아니라 그 빠른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만약 광속이 관찰자에 따라 다르다면, 눈앞 풍경이 그 얼마나 뒤죽박죽이겠는가. 그래서 명민한 물리학자들은 세상의 길이를 재는 기준인 1미터(m)를 빛이 진공에서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거리로 정의했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바탕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세상에 복잡한 것 많아도 마음만 한 게 또 있을까.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마음. 도무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마음. 그 마음 내려놓아라, 쉽게 말씀들 하시지만, 아니 도대체 어디에 있는 줄을 알아야 꼬리라도 붙들지 않겠는가.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라고 국어사전은 풀이하지만 마음을 저 말의 접시에 다 담는다고 여기는 마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 말할 수 없는 마음. 엎질러진 물 같은 마음. 태풍 같은 마음과 그 태풍의 눈 같은 마음이 지척에서 동거하는 마음. 만만한 동생이라면 어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 이렇게 잠시라도 머무는 바 없이 까불거리는 마음을 붙잡으려고 우리말 ‘마음’에는 바위 같은 미음을 두 개나 앉혀 놓았는가. 그래도 또 어디로 가겠다고 모래알을 만들며 들썩이는 저 마음을 어찌하나.
자신의 정체를 감쪽같이 숨기고 사물을 보여주는 햇빛처럼, 대상을 떠올리게 할 뿐 그 누구에게도 마음은 들킨 적 없다. 구불구불 능선 같은 영어 mind 말고, 한자 心을 관찰해 본다. 애당초 하나로 꿰이는 게 아니었나. 어지럽게 흩어지는 구름 같은 마음, 미풍에도 흩날리는 꽃잎 같은 心. 비스듬한 획이 미늘처럼 확 잡아채지 않았다면 아직도 너는 心을 다 그리지 못했을까.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건방도 떨지만 오래 묵힌 골동품처럼 은근 고졸한 맛도 풍기는 마음 心.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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