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게임이 아니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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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지는 게임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주말마다 취미로 즐기는 5 대 5 전투 온라인 게임에서 연패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무룩해진다.
지는 게임을 하면서도 꺼내지 않는 말이 있는데, "그냥 중간에 나갈까?"란 말이다.
상대방과 전투를 벌이는 게임에선 꼭 질 것 같다 싶으면 판을 나가버리는 부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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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민 | 인구복지팀 기자
누구도 지는 게임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주말마다 취미로 즐기는 5 대 5 전투 온라인 게임에서 연패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무룩해진다. 그럴 때면 함께 게임을 하는 친구들에게 “이번 판만 하고 끌까?”라거나, “이기는 판을 막판(마지막 판)으로 할까?”라는 제안을 건넨다. 지는 게임을 하면서도 꺼내지 않는 말이 있는데, “그냥 중간에 나갈까?”란 말이다. 이건 이번 판을 엎자는 뜻이다. 상대방과 전투를 벌이는 게임에선 꼭 질 것 같다 싶으면 판을 나가버리는 부류가 있다. 보통 한두명이 나가고 나면 새로운 사람이 중간에 합류해서 판이 이어지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게임을 나가고 새로운 사람이 그 판에 들어오지 않으면 판 자체가 엎어지기도 한다. 게임에 들인 시간도, 그 판에서 이뤘던 성취도 전부 무용지물로 돌아간다. 열심히 그 판을 플레이하고 있던 사람들만 허무해진다.
최근 취재를 하면서 ‘이럴 바엔 판을 엎어버리자’는 모습을 목격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3대 개혁으로 지목했던 연금개혁이 대표적이다. 연금개혁 공론화를 위해 구성된 시민대표단이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을 중점에 둔 방안보다 노후 소득보장도 고려하는 방안을 더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곧 임기가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 논의하자”며 그동안의 논의를 원점으로 돌린 대통령과 여당, 일부 전문가들의 모습이 그렇다. 지난 7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밝힌 이후 17년 만의 연금개혁은 진전이 없어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29일이면 판이 엎어진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결정들이 ‘승패’에 매몰된 게임이 되고 있기 때문일까. 시민대표단의 공론화 과정 이후 ‘소득보장이 이겼다, 재정안정이 졌다’는 등의 표현이 이어졌다. 사실상 재정안정을 목표로 개혁을 추진하려던 정부와 여당은 공론화 과정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개혁 자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판 엎기’ 모드로 들어섰다. ‘승리’했으니 밀고 나가겠다는 편과 ‘질 수 없다’는 편의 줄다리기가 한달여간 계속됐다. “국민연금 공론화 과정은 아쉽지만, 저희가 국민들에게 잘 설득하지 못한 탓이겠죠. (소득보장 방안을 더 지지한) 민의를 무시할 순 없으니, 이를 반영하되 재정안정도 고려한 절충안이 나오면 좋겠어요. 어떻게든 21대 국회에서 입법이 돼야 합니다.”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을 주장해온 한 전문가는 소득보장에 중점을 둔 개혁안의 지지가 더 높았다는 시민 공론화 결과가 나온 뒤 나눈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론화 결과가 나오자 “인정할 수 없다”며 그동안의 과정을 훼손하고,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보단 성숙한 태도로 느껴졌다.
다행히도 정치는 게임이 아니다. 게임 밖 세상에는 ‘승패’ 외에 ‘합의’도 있다. 연금개혁 재정안정과 소득보장 양쪽으로 갈라진 이들과 직접 대화해보면 노후 소득보장과 연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각자의 합리적인 소신이 있었다. 목적은 같다는 의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연금개혁을 의제로 영수회담을 개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제는 승부를 가리는 게임은 관두고, 남아 있는 짧은 시간 동안 합의를 찾는 대화가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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