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혜의 대상이 아닌 연대의 주체 [세상읽기]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5월14일 민생토론회 시즌2가 시작됐다. 총선 이후 재개된 첫 토론회에서 대통령의 일성이 노동자들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날의 주 내용은 노동약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부서를 만들고,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가칭, 노동약자법)을 제정하여 질병·실업으로 어려울 때 도움받을 수 있는 공제회 설치를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동계의 수십년에 걸친 숙원 사업인 노동법원 설치도 지시했다.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노동 사건의 신속한 해결을 위한 사법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사실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정책을 총선 이후 재개된 첫 민생토론회에서 발표한 정확한 배경과 맥락이야 모르겠지만 다양한 고용 형태를 가진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지원조직과 사법체계를 모두 갖추겠다는 것이니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정책의 목적과 그 정책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겉으로 드러난 정책은 미사여구에 불과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후 브리핑문에서는 대통령과 고용노동부 장관이 민생토론회에서 참여한 노동자들을 통해 직접 들은 이야기 중에 악성 임금체불, 비정규직 차별,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피해, 플랫폼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언급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겠노라 다짐하고 있었다. 기존의 노동관계법과 제도가 조직 노동자와 전형적 노동자의 특성만을 반영하니 새로운 노동 형태를 고려한 새로운 보호 법안을 만들고, 미조직 노동자 전담부서를 만들고, 체불임금이나 근로기준법 회피용 사업장 쪼개기 같은 행태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통령의 언급을 전한 기사들을 보면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단어는 ‘노동약자’였다. 언젠가부터 많이 사용하고 있는 ‘취약노동자’와 비슷한 맥락의 단어이고, 그 정의가 애매하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노동약자’는 어딘가 ‘노동강자’가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 같아서였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후 브리핑문을 보니 ‘노동약자’는 ‘미조직 노동자’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고용노동부 내에 ‘미조직 근로자 지원과’를 정식 신설한다고도 했다. 대표적 지원 체계로 이야기한 ‘근로자 이음센터’는 미조직 노동자에게 무료 노동법 상담과 교육 등의 서비스를 지원하고 소통하기 위한 지역별 커뮤니티 센터라고 한다. 센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와 상담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것이고, 정부가 하겠다는 정책 역시 중요하고 시급히 필요한 부분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겠다니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여전히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어려워 단체협상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미조직 노동자여서 ‘약한’ 거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의 가장 기초는 노동3권의 보장 아닐까? 노동조합의 도움을 못 받아서 상황이 악화되고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것이라면, 조직화를 돕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고용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임금노동자로 분류하기 어려워 근로기준법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해서조차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말이다.
실제로 국제노동기구가 2025~2026년 총회 논의를 염두에 두고 마련 중인 플랫폼 노동자 보호 방안에는 단결권과 단체협상의 자유를 가장 먼저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사회보장 강화, 근로감독 대상으로의 포함, 모성 보호, 산업안전보건, 노동시간에 대한 제한, 강제노동 금지 등에 대한 내용을 같이 논의 중이다. 플랫폼 노동자로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정부의 발표 조치는 중요한 한가지를 빼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 패키지에 공공병원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에 노동자의 권리는 없다. 많은 수의 노동자가 약자인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약자인 노동자에게 국가가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한 주체로서 연대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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