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수계 곳곳서 ‘좀비 발암물질’ 미국 기준치 넘겼다···환경부 “먹는물 우려 없어”
낙동강 상수원의 수질측정센터 4곳에서 발암물질이자 ‘좀비 화합물’로 불리는 과불화화합물이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는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고도 “먹는 물 우려는 없다”며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환경부는 23일 경북 왜관과 강정, 남지, 물금 등 4개 지점에서 지난해 수행한 낙동강 미량오염물질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환경부는 이 조사 결과를 담은 ‘낙동강 미량오염물질 114종 조사, 안전한 먹는 물 생산에 우려 없는 수준’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검출된 76종 중에 국내외 기준이 있는 17종은 모두 기준치 이내로 나타났으며, 국내외 기준이 없는 나머지 59종은 국외 검출농도보다 낮거나 유사한 수준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배포한 상세 자료를 살펴보면 발암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AS) 중 일부가 EPA 기준치를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EPA는 지난달 PFAS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과불화옥탄산(PFOA)과 과불화옥탄술폰산(PFOS)의 기준치를 4ppt(부피의 단위·1리터당 나노그램)로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역시 과불화화합물의 일종인 과불화노난산(PFNA)과 과불화헥산술폰산(PFHxS) 등은 10ppt로 기준치를 정했다.
이는 미국지질조사국(USGS)이 2016~2021년 사이 수돗물 성분을 분석한 결과 45%가 넘는 샘플에서 이 물질이 검출된 것에 따른 조치다. 수돗물 등에 극미량만 포함되도 다수 시민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기준치를 강화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먹는물 수질 감시항목에 PFOA와 PFOS, PFHxS 등 과불화화합물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PFOA와 PFOS는 70ppt, PFHxS는 48ppt만 넘지 않으면 되도록 하는 헐거운 기준치를 적용하고 있다.
과불화화합물은 안정적인 화학구조로 분해가 잘 안 되는 탓에 일명 ‘영원한 화합물’, ‘불멸의 화학물질’, ‘좀비 화합물’ 등으로 불리는 물질이다. 방수, 내열 기능 등이 있어 주로 식품 포장지, 프라이팬이나 냄비 등 조리기구의 코팅, 고어텍스 등 합성섬유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성인은 물론 임신부의 탯줄을 통해 태아까지도 노출될 우려가 있는 유해물질이어서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 등도 규제를 강화한다. 이 화합물의 건강 악영향이 알려지면서 고어텍스 측은 2013년 PFOA 사용을 배제했고, 2018년부터는 과불화화합물 전반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구체적으로 왜관에서는 PFOA가 최대 6.1ppt로 EPA 기준치를 넘겼고, 남지와 물금에서는 이 물질 농도가 각각 14.5ppt와 12.6ppt로 기준치의 3배를 넘어섰다. 또 물금에서는 PFOS가 4.0ppt로 기준치와 같은 수치가 기록됐다.
EPA가 최근 강화한 기준치를 넘긴 수치가 곳곳에서 확인됐음에도 환경부는 보도자료에서 이들 물질에 대해 “국외 기준치가 없는 물질”이라고 표시했다. 환경부는 당초 해당 자료를 배포할 때는 상세 자료를 누락시켰다가 뒤늦게 다시 배포하는 등 석연치 않은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낙동강 수계에서는 지난해에도 발암물질인 총트리할로메탄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바 있으며, 4대강사업으로 인한 녹조가 내뿜는 마이크로시스틴 등 독성물질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통화에서 “미국 EPA의 기준 강화는 이미 발표됐지만 아직은 유예기간이고, 오는 6월부터 시행 예정이라 포함시키지 않았다”며 “이번 조사에서는 국내 먹는 물 기준의 감시항목에 따른 내용만을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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