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지 말라"… KBS가 '고성국 사퇴 피케팅' 취재 막은 이유
KBS는 요즘 프로그램 진행자 논란으로 어수선하다. 특히 20일부터 KBS 1라디오 ‘전격 시사’ 진행을 맡은 고성국씨에 대한 내부 구성원 반발이 거세다. 고씨가 첫 방송을 진행한 날부터 매일 KBS 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고성국씨 진행자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할 정도로 구성원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기자협회보는 KBS 기자들이 고성국씨를 반대하는 이유 등 직접 목소리를 듣기 위해 23일 아침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라디오센터 앞에서 나흘째 열린 피케팅 현장을 취재하려고 했다.
하지만 KBS 사측의 방해로 피켓 시위 현장에 들어서지 못했다. 피켓 시위 참여자인 KBS 구성원을 통해 사전에 방문객 예약을 신청한 기자는 오전 6시10분께 KBS 본관에 도착했다. 방문 목적을 묻는 경비 질문에 “취재 목적”이라 답하고 방문증을 받아 본관 내부로 통하는 게이트를 통과했다. 6시30분 라디오 스튜디오가 위치한 4층에 도착했으나 피켓 시위가 열리지 않아 2층 로비에서 대기했다.
곧바로 6시40분께 이영일 KBS 노사협력주간, 이전택 노사협력팀장은 KBS 시설의 방호·보안협력을 담당하는 KBS시큐리티 인력 여러명을 대동하고 기자에게 다가와 “4층은 라디오센터가 있는 곳이고 KBS에서 가장 중요한 보안 시설”이라는 이유를 대며 4층에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기자는 “라디오센터 안까지 들어가려는 게 아니고, 피케팅이 열리는 복도에서 취재하려는 거다. 피켓 시위 참여자를 만나기 위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전택 팀장은 기자에게 “취재하러 가는 공간이 회사 시설 내 공간이지 않나. 우기지 말라”며 “구성원이 (방문) 예약했다고 해도 방문할 수 있는 곳만 방문하는 거고 아무 데나 막 들어갈 수 없다. 갈 수 있는 곳은 여기(2층 로비)가 끝이다. 취재할 거면 여기서 하라”고 말했다. 실랑이하는 와중에 이영일 주간은 “나도 기자다. 30년 됐다. 검찰 출입해도 (내부를) 다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를 찾아올 때부터 이전택 팀장 등이 “촬영하러 왔느냐”고 묻기에 “촬영은 하지 않겠다. 현장 상황만 지켜보겠다”고 설득했지만, 사측은 끝내 기자를 내보냈다. 그 사이 기자가 있던 2층 로비엔 시큐리티 인원이 10여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본관에서 신관으로 통하는 복도를 나서고 있는 동안에도 시큐리티 인력 1명은 기자의 뒤를 따라오기도 했다. 고성국씨는 이날 오전 7시쯤 라디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고, KBS 기자협회 등의 출퇴근길 피케팅은 5~10분여 만에 끝났다고 전해진다. KBS 기자협회와 KBS본부는 24일까지 고성국씨 반대 피케팅을 진행한다.
고성국씨 시사 진행자 기용, ‘역사저널 그날’ 낙하산 MC 논란… 행동 나선 KBS 구성원들
노태영 KBS 기자협회장은 이날 피켓 시위가 끝나고 기자를 만나 고성국씨 반대 피케팅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은 당신이 여기서 방송하는 걸 인정할 수 없다’라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노태영 협회장은 “고씨가 KBS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부적절한 인사라는 것에 이견을 제시하는 기자는 없었다. 다만 과거에도 특정 정당 소속의 정치인 등 KBS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있었는데 왜 KBS 기자협회가 이 건만 반대하느냐는 의견은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번에 ‘전격 시사’ 등 일부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이 보도본부로 이관됐고 기자들이 PD 업무를 하게 됐기 때문에 기자협회가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사장이 바뀌어 고성국씨와 대척점에 있는 편향적 관점의 인물이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들어선다 했을 때 현재 우리가 가만히 있거나 목소리 내지 않으면 반발할 근거가 없을 것”이라며 “정파를 따지지 않고 공정하지 않은 사람,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은 진행자로 안 된다는 기본 원칙은 계속 세워야 한다. 앞으로도 방송에서 불공정한 일이 있을 경우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모니터링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고성국씨는 ‘전격 시사’를 진행하면서도 매일 본인의 유튜브 방송에서 정파적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고 KBS 기자협회는 보고 있다. 노태영 협회장은 “KBS는 어쨌든 기계적 균형이라도 지켜서 공정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방송이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수신료를 받는 것이지 않나. 외부에서 온 한편에 치우친 사람이 들어와 있으면 KBS 이미지는 그대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며 “최소한 라디오를 하는 동안엔 유튜브를 잠시 쉬겠다는 그 정도의 결기도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씨가 진행자로 발탁된 배경도 석연치 않다는 시선도 있다. KBS가 ‘전격 시사’ 진행자 교체 소식을 대외로 알리기 약 일주일 전 사측은 제작진에게 갑작스레 진행자 교체 통보를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KBS기자협회는 16일 성명에서 사측을 향해 진행자 채택 즉각 취소와 함께 고성국 평론가를 진행자로 추천한 내부 인사를 공개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노태영 협회장은 “고성국씨부터 자신의 방송에서 KBS가 바뀌었으니 우리 편이 돼야 한다는 식의 얘기도 했었기 때문에 더욱 외부의 누군가가 추천을 한 게 아닌지, 그걸 받아 내부에 전달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 논란이 된 ‘역사저널 그날’ 프로그램 낙하산 MC 논란과 관련해서도 KBS PD협회 등은 이제원 제작1본부장 사무실 앞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원 본부장의 특정 MC 요구로 촉발된 제작진 해산, 프로그램 제작 중단 사태가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 22일에도 KBS본부 조합원, KBS PD협회 구성원 등 80여명은 서울 여의도 KBS 신관 로비에서 ‘낙하산 진행자 선임 시도 규탄’ 피케팅을 진행했다.
지난 13일 제작진과 KBS PD협회 성명 등에 따르면 ‘역사그날’ 제작진은 프로그램 개편 과정에서 한가인씨를 섭외해 4월30일 첫 녹화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녹화까지 사흘 앞둔 상황에서 이제원 제작본부장은 조수빈 전 채널A 앵커를 MC로 내정시킬 것을 지시했고, 제작진이 반대하자 제작진 해산과 프로그램 무기한 보류 통보를 내렸다.
KBS는 14일 <역사저널 관련 사실관계는 이렇습니다> 자료를 내어 “3월부터 이제원 본부장은 조수민씨를 제안”했고, 4월 제작진이 유명 배우를 섭외했다고 하자 이제원 본부장은 “잘했다”고 했으나 다시 “조수민씨를 MC로 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세원 KBS PD협회장은 22일 피켓 시위에서 “특정한 사람을 외압으로 추정되는 방식으로 MC로 넣으려고 하다가 실패한 후에 프로그램 없애는 행위는 절대 용납될 수가 없다”며 “박민 사장과 이제원 본부장이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나가게 만들도록 최선을 다해서 싸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KBS본부는 지난 16일 성명을 내어 “이제원씨(본부장)는 경영진의 티타임 과정에서 경영진 중 누군가가 조수빈 씨를 제안했다고 흘리듯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제작본부와 전혀 상관없는 경영진 누군가가 ‘역사그날’ MC에 자신이 원하는 조수빈씨를 꽂으려 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동안 이제원씨가 벌인 만행보다 더욱 심각한 불법 행위가 될 수 있다. MC 선정에 입김을 넣은 사람이 누구인지, 해당 인사는 왜 해당 아나운서를 MC로 제안한 것인지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Copyright © 기자협회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TBS "100명 구조조정… 최소 인원으로 방송 지킬 것" - 한국기자협회
- "지역신문법 있었기에 기자 정체성 잃지 않을 수 있었다" - 한국기자협회
- 한경 아르떼, 세계신문협 '아시안 미디어 어워즈' 은상 - 한국기자협회
- "박장범 후보, KBS 기자 495명 목소리 직시하라" - 한국기자협회
- '두루뭉술' 지적조차 KBS 뉴스엔 없었다 - 한국기자협회
- 아침신문, 고개 숙인 윤 대통령 사진 실었지만… - 한국기자협회
- '끝장회견' 하자더니 2시간 만에 끝… MBC·JTBC 또 빠져 - 한국기자협회
- [부음] 정승혜 MBC 정치팀 부장 모친상 - 한국기자협회
- "트럼프가 돌아왔다"… 국내언론 일제히 안보·경제 파장 우려 - 한국기자협회
- "국제신문 살리자"... 부산 시민사회 발 벗고 나섰다 - 한국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