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세사기특별법' 현실성부터 따져야
전국 각지에서 '빌라 사기꾼'들이 다수 검거됐지만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올들어 4월까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주인을 대신해 세입자에게 반환한 전세금(대위변제액)은 1조2655억원으로 전년 동기(8124억원) 대비 55.8% 늘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사고액은 1조9062억원, 사고 건수는 8786건으로 집계됐다. 이대로라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4조3347억원)보다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선구제 후회수' 방식의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 개정안을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전세 만기 후 미반환 된 보증금 반환채권을 매입해 세입자에게 보상 후 구상권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피해자 단체와 야당은 정부의 적극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실현 가능성과 예산 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먼저 법률 자체가 다소 미비하다. 개정안에 따르면 피해자의 보증금 반환채권이 HUG 등 공공기관에 의해 가치평가를 하고 매입 비용은 경·공매 등을 통해 회수해야 한다. 공정한 가치평가라는 추상적인 표현만이 있고 세부 기준이 없으므로 매매대금 산정과 지급 방법에 따른 평가기준의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피해자가 지원받을 수 있는 최소 채권 매입 가격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우선변제 보증금 비율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른 담보권보다 먼저 변제되는 최우선변제금은 통상 보증금의 30% 안팎에서 정해지지만 지역별로 상이하다는 문제가 있다. 이렇게 매입 가격이 정해지더라도 피해자들이 해당 결과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이들의 보증금 반환채권은 대항력 있는 일부 선순위 임차인을 제외하고 대부분 부실채권에 해당한다. 피해자의 원금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다 보니 매입 가격은 당초 보증금보다 모자랄 수밖에 없다. 공정가치 평가 결과를 피해 당사자들이 수용할 수 없다면 또 다른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앞서 지난달 개최된 '전세사기피해지원의 성과 및 과제에 대한 토론회'에서 이장원 국토부 피해지원총괄과장은 "현재 0원에 가까운 채권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며 "경·공매 시장에 유사 물건이 쏟아지고 있어 낙찰가율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경매시장에 나온 빌라 등 비아파트는 유찰을 거듭하고 있다. 부동산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의 조사 결과 지난달 서울에서 진행된 빌라 법원 경매는 총 1456건이었고 낙찰률은 15%(218건)에 그쳤다.
가치가 낮아진 채권을 매입해야 하는 정부와 HUG는 예산 부족을 우려하고 있다. 국토부는 내년 5월까지 전세사기 피해자 등 인정 건수가 3만6000건을 넘길 것으로 예상해 최대 3조~4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경매로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을 제외한 비용은 최종 재정 투입해야 한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피해자 지원 기금은 무주택 서민이 내 집 마련을 위해 모은 청약저축이 기본인 언젠가 돌려드려야 할 부채성 자금"이라며 "잠시 맡긴 돈을 피해자에게 지원하면 최소 1조원에 달하는 손실이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 논란도 제기된다. 김윤후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전세사기 외에 보이스피싱 등 다른 사기 피해자들도 많은데 전세사기 피해자에게만 정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헌법상 평등권이나 차별금지 원칙에 반하지 않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일 대구에서 세상을 등진 여덟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가 발생했다. 피해자들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빠른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갑작스레 전 재산이나 다름 없는 전세금을 모두 날릴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특별법은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지푸라기의 의미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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