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날 해고해서 고마워"...'구글 임원'에서 'N잡러 알바생'으로 변신하다
16년간 일했던 구글에서 정리해고
50대에 시작하는 실리콘밸리 N잡러의 삶
"커리어 확장 준비해야... 사이드 허슬 권해"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다 실수로 '레이오프(layoff·해고)'를 '플레이오프(playoff·스포츠 정규 리그가 끝난 뒤 우승자를 가리기 위해 치르는 경기)'로 친 거예요. 그 순간 깨달았죠. 내가 정리해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있다는 걸요."
16년을 다닌 구글에서 어느 날 이메일 한 통으로 정리해고를 당했다. 비원어민 최초로 구글 미국 본사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 이미 뼛속까지 '구글러'가 돼 있던 터였다. "심장이 베이는 듯한"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 회사를 떠나 나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실리콘밸리 N잡러 되기.'
구글코리아 임원에서 구글 본사 디렉터까지 승승장구하던 로이스 김(56·정김경숙)은 최근 출간한 책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에서 최악의 시련을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바꾼 과정을 소개한다. 그는 2007년 구글코리아 사무직 직원이 15명이 채 안 되던 시절 홍보 담당으로 입사해 40대 초에 임원에 올랐다. 2019년 50세의 나이에 임원 자리를 뒤로하고 소속을 본사로 옮겨 지난해까지 각국 구글 법인과 본사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 일했다. 그는 "정리해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었지만 만약 이 일이 없었다면 '구글'이라는 회사를 스스로 박차고 나올 순 없었을 것"이라며 "실직이 커리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방법은 간단했다. 실직 사실을 주변에 가감 없이 알리고 몸을 바쁘게 움직인 것. 갑작스러운 충격을 겪게 되면 잠시 쉴 법도 한데 해고 통보를 받고 나서 정김씨가 떠올린 것은 은퇴나 휴식이 아닌 이직이었다. 구글 본사가 있는 실리콘밸리를 떠나지 않고 더욱 많은 사람을 만나며 'N잡러'로 변신한 이유다. 그렇게 하루 24시간을 시간 단위로 쪼개 슈퍼마켓 트레이더 조아르바이트생으로, 스타벅스의 바리스타로, 차량 공유 서비스인 리프트(Lyft)의 운전사로 일을 시작했다. "50대가 된 지금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평생 머리로 일했으니 몸으로 하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죠. 체력은 자신 있었거든요."
"내 커리어 운전대는 내가 잡는다"
30년간 쉴 틈 없이 계속한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후 되찾은 것은 '긴 호흡'이다. 책에는 정김씨가 1년간 갭이어(gap year·일을 중단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기간) 프로젝트을 진행하는 동안 노동현장의 바닥에서 몸으로 배우고 익힌 과정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그는 트레이더 조에 출근한 지 한 달 안에 함께 일하는 150명 동료의 이름을 외워 '가장 신임하는 동료'로 선정됐다. 알바생 신분으로 매장 업무 매뉴얼을 만드는 등 주도적으로 일하다 보니 6개월 만에 주문, 디스플레이, 재고관리 등을 책임지는 섹션 리드가 됐고, 메이트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그는 "50대가 된 나도 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은 말해 뭐 하겠냐"면서 "실패 앞에서 머뭇거리고, 겁먹고, 움츠러들어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하나의 예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명 '실리콘밸리 몸체험'은 현재 진행 중이다. "아직 다음 스텝이 정해지지는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정김씨는 잠시 한국에 머물며 독자를 만나고 있다. 대부분 커리어 전환·공백으로 고민하는 20, 30대 여성들이다. 커리어 정점을 찍고 다시 새로운 도전 앞에선 선배로서 그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조언이 무엇인지를 묻자 '사이드 허슬(side hustle)'이란 답이 돌아왔다. 사이드 허슬이란 직장을 다니면서 본업 이외에 다른 일과 취미를 하는 것을 말한다. "계산원으로, 바리스타로,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구글에서 일할 때부터 이런 일을 시작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더라고요. 내가 주도권을 갖고 커리어를 이어나가기 위해선 다양한 분야의 경험이 필요해요. 당장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날것의 나'를 되도록 많이 키워야 합니다. 회사라는 후광을 벗어났을 때 그게 큰 힘이 될 거예요."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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