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빼돌리고 면접교섭권 없다 핑계"..국회에 달린 양육비 선지급제

김지현 기자 2024. 5.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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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선지급제 도입되면 정부가 채무자 동의 없이 금융정보 알 수 있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중구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최모씨 /사진제공=여성가족부

2009년 이혼해 두 아이를 키우는 최모씨(50대)는 지난해 3월을 잊을 수 없다. 국내가 아닌 미국에 거주하는 전 남편에게서 오래전부터 받지 못한 양육비 1억2000만원을 일시에 받았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이하 이행원)이 전 남편을 상대로 출국금지 제재조치를 내린 덕분이다.

최씨는 "명단공개와 출금 조치가 이뤄진 지 모른 전 남편이 일이 있어 한국에 왔다가 다시 출국하는 과정에서 해당 사실을 알게 됐다"며 "출금을 해제하기 위해선 밀린 양육비 전액을 지급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만약 출금 조치가 없었다면 최씨는 전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평생 받지 못한 채 자녀들을 키워야 했을지도 모른다.
제재조치·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모두 증가
/그래픽=이지혜
23일 이행원에 따르면 지난해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제재조치 현황은 △출국금지 367건 △운전면허 정지 230건 △명단공개 42건 등으로 600건을 넘어섰다. 2021년 7월 첫 제재조치가 시행된 이후 관련 건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저소득·차상위계층 한부모 가정을 대상으로 자녀 1명당 월 20만원(최대 12개월)을 지원하는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지원금액은 총 15억4700만원으로 역시 매년 증가세다. 지원 자녀도 953명으로 처음 시행한 2015년 79명에서 10배 이상이 뛰었다.

이행원에선 양육비 청구 및 이행확보를 위한 법률지원,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및 면접교섭서비스 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이행원을 통한 양육비이행률은 2015년 21.2%에서 지난해 42.8%로 두 배 증가했다. 최씨는 "이행원이 생기기 전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갔을 땐 전 남편이 해외에 있어 양육비를 받는 게 어렵다고 했다"며 "하지만 이행원에서 공시송달이란 걸 알려줬고, 결국 양육비를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이행원 인력은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이달 기준 이행원 소속 변호사는 총 11명으로, 그마저도 4명은 관리자급 또는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 파견을 가 있어 직접소송을 하는 변호사는 7명에 그친다. 이런 탓에 지난해 변호사 1명당 맡은 소송 건수는 253건에 달한다. 예산이 한정돼 있다 보니 임금도 업계 평균에 비해 낮은 편에 속한다.
변호사 1명당 250건 직접 소송..'업무 가중'
지난 22일 서울 중구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양세희 양육비이행확보부 부장 변호사(왼쪽)와 직접소송 업무를 하는 유민희 양육비이행확보부 차장 변호사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여성가족부
양육비를 지급할 능력이 아예 없거나, 내지 않으려고 작정한 채무자들을 쫓다 보니 업무 강도도 만만찮다. 최씨의 경우만 해도 소송을 시작한 지 8년이 넘어서야 양육비를 받았다. 이행원 소속 양세희 변호사는 "양육비 이행명령, 감치명령을 받아도 채무자가 어딨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 현장조사 활동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특히 본인 동의가 있어야만 금융재산 조회를 할 수 있단 점은 업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양 변호사는 "어느 은행에 예금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과거 채무자가 주거래 은행으로 사용했던 곳에 대한 신청인 진술을 근거로 찾거나, 5대 은행을 대상으로 예금압류 신청을 해도 예금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고 지적했다. 가족 명의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면접교섭권이 없다는 이유를 대는 등 양육비를 안 주려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는 9월 이행원의 독립기관화가 이뤄지고,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제재조치가 감치명령 없이도 이행명령 후 가능하도록 절차가 간소화된단 점이다. 이행원에선 인력과 예산 등의 확대와 양육비이행률이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가부·이행원 "양육비 선지급제 국회 통과 시급"
22일 서울 중구 양육비이행관리원 콜센터(양육비 상담반)에서 종사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여성가족부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양육비 선지급제'엔 정부가 채무자 동의 없이 금융정보를 포함한 소득·재산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다만 양육비 선지급제 시행을 위해선 지난 1일 발의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해당 법안엔 양육비 선지급제 시행에 필요한 법적 근거가 포함돼 있다. 전주원 이행원장은 "21대 국회에서 통과되면 너무 좋겠지만, (일주일이 남지 않은) 지금 시점에선 통과가 어려워 보이고, 22대로 넘어가면 다시 법안을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양육비 선지급제가 도입되면 현재 최대 12개월까지인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의 지원 기간도 자녀가 18세가 될 때까지로 크게 늘어난다. 지원기준도 중위소득 75% 이하에서 100%로 확대돼 대상자가 953명에서 약 1만9000만명까지 증가한다.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은 정부가 양육비 문제를 아동의 생존권 차원에서 보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아이를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어난 아이가 잘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만큼 저출생 대책에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김지현 기자 flo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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