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입양 기억 딛고 다시 일어날 힘 기르는 게 중요해요"
"입양인들은 각자 입양 배경과 사연이 다르고, 그들의 삶에서 늘 행복한 스토리만 있는 게 아니죠. 아픈 기억을 딛고 자신에 대해 좀 더 생각하면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해요."
벨기에 남부 나무르의 한 대학에서 디지털 아트 강사로 일하는 입양 한인 샹탈 보엘(한국명 사영자·60)은 21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서울호텔에서 취재진과 만나 "양모와의 관계는 어려웠지만 긍정적인 삶을 살아왔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재외동포청이 입양 동포와 모국과의 유대감 형성과 동포 간 연대를 위해 마련한 '2024 세계한인입양동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딸 사라 코팡(34) 및 아들 조르주 코팡(32)과 함께 한국을 찾았습니다.
사 씨는 "전업주부인 양모에게서 의식주 등 물질적인 도움을 아낌없이 받았지만, 따뜻한 사랑은 받지는 못했다"며 "저를 포함한 삼남매에 엄격했지만, 모욕적인 언사 등 자신만이 양육 방식을 고집해 어릴 적부터 상처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친자녀들도 부모를 어려워할 정도였다. 이런 게 삶의 일부분인 것 같다"며 "이제는 마음 편히 살고 싶어서 최근 양모에게 절연을 선언했다. 양모의 불행을 바라는 것은 아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습니다.
1964년 8월 20일 부산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이듬해 9월 18일 부산 성모보육원(현 아이들의 집)에 맡겨졌습니다.
보육원 등록 당시 이름은 사영자이지만, 정확한 이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후 1969년 12월 보육원 퇴소 절차를 거친 뒤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벨기에의 한 가정에 입양됐습니다.
사 씨는 "당시 벨기에로 입양된 아이들을 태운 비행기가 있었다고 들었고, 제가 3호기를 탔다는 것만 알고 있다"며 "어릴 때부터 왼쪽 팔에 있는 검은 점이 다른 입양인들과 비교할 때 특별한 신체적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금발에 눈이 크고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이 유럽인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릴 때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내 외모에 실망했다"면서도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만족하며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벨기에 대학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디지털 아트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민간 기업에서는 광고 및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고, 2000년부터 석사과정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 씨는 2004년 11월 뿌리 찾기를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해 입양 기관 등에 도움을 청했지만,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후에도 두 차례 더 한국을 찾아 딸 사라와 함께 국내 여행을 하는 등 모국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습니다.
올해 2월에는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주벨기에 한국대사관에서 유전자 채취·등록을 했습니다.
그는 "친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환상과도 같았다. 친부모가 입양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며 "한때는 원망도 많이 했다. 친부모가 살아 있다면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사 씨는 "딸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을 줬다"며 옆에 있던 사라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사라는 "모국을 그리워하는 엄마를 돕고 싶었고, 엄마가 한국계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생각에 뿌리 찾기를 위한 여러 방안을 시도해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기업 IBM 앤트워프 지사에서 일하는 사라는 벨기에에서 한국어 수업, 전통무용, 연등 만들기, 한국요리 교실 등에 참여하며 엄마의 모국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1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어 등을 공부했습니다.
조르주는 브뤼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바이오 정보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논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조르주는 "첫 한국 방문인데 유럽 대도시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엄마가 먼저 벨기에로 돌아가면 한국에 며칠 더 머무르면서 자전거를 타고 한국의 곳곳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사영자 씨 제공,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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