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칼럼] 팬덤이 벼슬인가?

김재근 선임기자 2024. 5.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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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등 사회 전반에 팬덤문화
여론 아랑곳 않는 김호중 사건
분별없는 세상에 보내는 경고음
김재근 선임기자

요 며칠 사이 대한민국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가수 김호중 음주운전 사건이다.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결론이 어떻게 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법조계는 도로교통법 위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증거인멸 교사 등 여러 가지 혐의를 거론하고 있다. 그와 소속사의 잇따른 거짓과 변명은 의혹과 의문을 부채질했고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놀라운 것은 검찰총장까지 나서 "엄정대응"을 언급했는 데도 공연을 강행하겠다는 점이다. 마지못해 뒤늦게 음주운전을 시인해놓고도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한마디로 '팬덤'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15만 명에 이르는 까페 회원과 팬들이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20만원이 넘는 표도 팔아준다.

팬들은 "실수는 누구라도 한다." "우리는 무조건 응원한다."며 지지했고, 김호중은 "결과가 나오면 집으로 돌아오겠다."며 복귀를 암시했다. 팬덤이 이성적인 판단을 가로막고 있다.

팬덤(Fandom)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집단이나 그러한 문화현상을 일컫는다. 대개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지지하는 팬 집단을 가리킨다.

우리 사회도 산업화시대를 지나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곳곳에 팬덤문화가 형성됐다. 공연과 스포츠를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미디어와 SNS의 발달로 스타나 유명 인사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고 직접적인 소통도 가능해졌다. 무리를 지어 특정인을 열성적으로 따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가요계는 1980년대 조용필을 좋아하는 오빠부대가 등장했고, 90년대에는 서태지 HOT GOD, 2000년대에는 동방신기와 빅뱅, 요즘은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같은 세계적 아이돌 그룹이 강력한 팬덤을 갖고 있다. 스포츠계도 박지성 김연아 손흥민 같은 선수들에게 팬덤이 형성됐다.

정치권에도 팬덤이 등장했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노사모, 박근혜를 따르는 박사모와 태극기부대, 문재인의 대깨문과 문빠, 윤석열의 윤사모와 대깨윤, 이재명의 개딸 등이 정치 전면에 나타났다.

문제는 팬덤문화가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특정인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선에서 머물렀지만 이제는 광적이고 맹목적으로 지지, 추종하기에 이르렀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여기고 저주와 비난을 퍼붓는다. 폐쇄적 편향적이며 무차별적으로 공격의 발톱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일부 연예인과 정치인들은 팬덤의 구름에 올라탄 채 교묘하게 이를 이용한다. 익명의 무리가 모인 팬덤 뒤에 숨어 치부를 감춘 채 돈과 권력을 챙기는 것이다. 라이벌을 공격하도록 조장, 묵인하기도 한다.

특히 정치권의 극렬 팬덤 폐해는 매우 심각하다. 극우와 극좌 세력이 정당이나 정치적 흐름을 흔들고 좌우한다. 극단적인 미디어와 유튜버가 맨 앞에서 부추기고 선동한다. 건강하고 이성적인 비판이나 대안은 무시되고 편 가르기와 증오가 전면을 장식한다. 다수의 시민과 유권자, 중도층을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가수 김호중의 팬덤과 정치계의 팬덤문화가 다르지 않다. 소수의 극렬한 팬덤에 함몰돼 도덕과 상식, 이성을 저버린 채 몰락의 활주로로 내닫고 있는 것이다.

분별력을 잃은 팬덤에 독재적이고 교활한 선동가가 올라탈까 두렵다. 이성적이고 냉철하다는 독일이 그런 길을 걸었다. 1934년 대통령과 총리를 통합한 총통 선거에서 아돌프 히틀러는 88.1%의 찬성표를 얻었고, 36년과 38년 총선에서 나치당은 98.8%와 99.01%를 득표했다.

우리사회 전반에 만연한 갈등과 분열의 팬덤문화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김호중 사건은 그 병폐가 치유불가능한 막장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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