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한·중·일 정상회담의 목적
4년 반 만에 3국 정상회담…평화·번영의 시대 열어야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중국연구센터 소장
한국 학생에게 제일 동경하는 나라를 꼽아보라고 하면, 상당수는 유럽 국가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유는 천차만별일 수 있지만 대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 문명의 중심지라 할 서유럽 국가들이나 복지국가로 알려진 북유럽 국가들의 이미지가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모국에 있는 친구들을 초대해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들의 시선으로 한국의 풍경을 그려내는 TV 프로그램을 가끔 보곤 한다.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초대한 외국인들의 국적을 따져보면 상당수가 유럽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TV 프로그램에서 한국도 유럽처럼 살기 좋고 발전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학생들이 여전히 유럽에 대한 선망을 갖고 있는 것도, 한국 사회가 유럽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는 것도 여전히 세계가 서구 중심으로 작동함을 보여주는 증표이다. 기실 ‘아시아’라는 개념어 자체가 유럽인이 발명한 것이고 그것도 유럽인이 대외 확장 과정에서 자신과 타자를 구별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는 연원을 알게 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 근대 세계가 유럽에서부터 형성된 것임을 비로소 다시 깨닫게 된다.
2012년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유럽연합(EU)이었다. 노벨위원회가 밝힌 선정 이유는 EU가 출범 60년 동안 유럽 국가들을 하나로 묶고 유럽의 평화와 화합, 민주주의,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본래 유럽은 가장 오랫동안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땅이었다. 특히 근대 이래 유럽 각국은 제국주의 열강이 됐으며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식민지 획득을 위해 전쟁을 벌였고 그 결과 1,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자신의 대륙에서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킬 제도적 방법을 모색했고 유럽연합(EU)이라는 유럽 통합은 그 귀결이었다. 유럽은 경제적 통합을 통해 유럽의 번영을 모색했고 정치적 통합을 통해 유럽의 평화를 달성했다. 유럽연합(EU)에 소속된 회원 국가들 사이에서 더 이상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회원국 사이의 시장이 통합돼 유럽인들은 유럽 시민으로의 정체성과 시민권을 누리고 있다. 비록 2020년 영국이 탈퇴했지만 유럽의 27개국이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서 유럽연합의 글로벌 영향력을 공유하고 있다.
조금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면, 유럽은 근대 세계 체계를 만들어 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대륙을 식민지로 삼아 제국주의 경쟁을 벌이다가 종국에는 자기들끼리 제국주의 전쟁을 벌여 세계대전의 비극을 만들더니, 이제 평화와 화합,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하며 유럽 내부의 통합을 이뤄내 자신들의 번영과 평화를 선제적으로 구축해 아시아인을 비롯한 세계 사람들에게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어온 셈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는 얘기에 ‘K 어쩌고’ 하면서 한국이 이만하면 유럽인도 부러워하는 국가가 되었다는 자부심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유럽 중심주의 근대 세계에서 들러리로 살아온 듯한 아시아인의 ‘느낌적 느낌’을 체감한다. 물론 우리나라가 위치한 동아시아에서도 동아시아공동체 모색의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특히 한·중·일 3국은 2008년 말 세계 경제위기를 계기로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중·일 정상회담을 처음으로 개최한 이래, 2009년 3국 정상은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에 합의하고 이후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을 위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노력을 해왔다. 예컨대 2010년 3국 캠퍼스아시아(CAMPUS Asia) 프로그램 도입, 2011년 3국 협력사무국(TCS) 설치, 2012년 3국 FTA 협상 개시에 합의하는 등 동아시아공동체 구축 노력이 계속됐다.
하지만 국가 이익의 충돌과 역사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한·중·일 사이에 긴장 관계가 다시 조성되곤 했다. 한편으로는 한·중·일 경제통합의 시발점으로 한중 FTA가 2014년 타결됐지만, 협력의 최고 결정체인 정상회담은 3국 중 두 국가의 정치 외교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중단됐다가 겨우 봉합돼 재개되는 단속적(斷續的) 상황이 반복돼 왔다. 5월 26, 27일 이틀간 한·중·일 정상회담이 4년 반 만에 서울에서 다시 개최된다는 소식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동아시아가 궁극적으로 공동체 통합에 이를 수 있을까? 그 전망은 밝지 않다. 유럽은 탈냉전 이후 유럽연합이라는 평화공동체를 제대로 공고화해 온 반면, 동아시아는 어느새 미중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패를 나누어 대결하는 신냉전 분위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도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평화 세상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걸까? 이러한 측면에서 곧 개최가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의 책임이 막중하다. 무엇보다 그 목적이 바로 동아시아 통합을 진전시켜 전쟁 위협이 없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여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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