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놀잇감이 되다

문일요 TheButter 기자 2024. 5. 2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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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자원 대표 인터뷰
비영리스타트업 자원의 이수영 대표는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아이들의 놀잇감으로 만든다. 지난 8일 만난 이 대표는 “교육적 가치와 환경적 임팩트에 귀 기울이는 기업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제조기업 생산 공장에서는 불가피하게 폐기물이 나온다. 불량품부터 부산물, 자투리 소재까지 다양하다. 비영리스타트업 ‘자원(ZAONE)’의 이수영 대표는 이런 폐기물을 ‘휴면자원’이라고 정의한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비영리 활동가들의 공간인 ‘동락가’에서 만난 이수영 대표는 휴면자원을 아이들의 놀이 수단으로 활용해 쓰레기 문제도 해결하고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자원을 순환시켜 탄소 발생과 폐기물 처리 비용을 줄이면서 기업과 비영리가 상생하는 구조다.

시작은 ‘영리스타트업’이었다. 어린이들의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해 2016년에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비영리로 전환을 결정했다. 이수영 대표는 지난 2021년 다음세대재단의 비영리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사업에 선정돼 조직화 과정을 밟았고, 이듬해 비영리 사단법인 자원을 설립했다. 2023년에는 아산나눔재단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을 거치면서 솔루션을 검증했고, 올초 초록우산의 지원으로 아동·청소년 분야 비영리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사업에 선발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스타트업으로 7년 넘게 운영하던 어린이 인문예술학교는 지난 3월에 문을 닫았다.

어쩌다 사교육

-스타트업 비즈니스가 잘 안됐나요.

“오히려 반대예요. 아이들이 전용 공간에서 창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인기 요인이었어요. 교육비도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었고요. 한 학기에 10그룹 100명 가까운 아이들이 교육 센터를 드나들었어요. 프리미엄 교육 콘텐츠로 입소문이 나면서 대기자가 200명에서 다음 학기에는 400명, 또 600명으로 줄지 않고 누적돼 늘더라고요. 입학한 아이들의 82%가 5년 이상 다닐 정도로 만족도는 높았거든요.”

-킬러 콘텐츠가 뭐였나요.

“아이들이 스스로 설계하고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는 자기주도 학습 프로그램입니다. 교과 과목은 아니고 인문학과 미술을 결합한 수업이었어요.”

-왜 사업을 확장하지 않았나요.

“사업을 시작할 때 정한 ‘교육 격차를 줄이자’라는 미션을 살리지 못했다고 판단했어요. 역대 매출을 냈는데도 기쁘지 않았어요.”

-고민의 결과가 비영리 전환인가요.

“영유아 시기의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영리 성격의 사업을 해야 한다는 판단이었어요. 정보가 빠른 학부모들이 찾는 수업이 아니라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비용 없이 받을 수 있는 전국구 수업이요. 돈을 벌면 결국 교육 격차를 심화하는 꼴이니까 결단이 필요했어요.”

-그런 확신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기록해 뒀어요. 그걸 가지고 연세대 아동가족학 연구진과 스터디도 했어요. 그래서 포착한 게 바로 ‘개방성’입니다. 아이들이 손으로 만지는 놀잇감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아이들의 양상이 달라져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지만 영리사업으로는 전국에 보급하기 한계가 있으니까요.”

아무튼 비영리

-기업들이 휴면자원을 보내주나요?

“현재 7곳에서 정기적으로 소재를 받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일이지만 사회문제 해결에 의지를 갖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다양한 형태와 물성의 소재를 보관하고 유통하는 게 가장 큰 과제죠. 우선 물류를 해결해야 기업과 파트너십도 확장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어떤 소재를 좋아하나요?

“보통 40종 정도 준비를 합니다. 아이들이 많이 찾는 건 요거트 용기입니다. 적당히 말랑하고 가위로 자르기도 쉽고요. 신발 밑창에 쓰이는 라텍스나 부직포, 목재 조각도 잘 써요. 소재마다 범용성 점수를 매겨서 아이들이 찾지 않으면 놀잇감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빼고, 그 자리에 새 소재를 추가합니다.”

-교육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요?

“전국의 지역아동센터, 아동보호시설, 어린이집, 돌봄센터 등을 직접 찾아가서 교육해요. 매주 어린이 60명 정도를 만나고 있어요. 수업 때마다 수십 종의 놀이 소재를 바리바리 싸가요. 수업에서는 목표를 주지 않아요. 2시간 정도 진행하는데, 처음엔 교사도 아이들도 당황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익숙해져요. 아이들이 알아서 오늘 무엇을 할지 정하고, 협력하고 문제를 풀어나가요. 정답에 대한 강박을 깨나가는 수업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 뒤 자원의 모습은 어떨까요?

“이탈리아에는 150곳이 넘는 기업으로부터 휴면자원을 제공받아 교육에 활용하는 ‘레미다(Remida)’라는 비영리단체가 있어요. 재활용 센터를 운영하면서 총 2750종의 다양한 소재를 학교에 보내고 교육 연구를 하고 있어요. 10년 뒤면 우리나라에서도 전국 교육 공간에 휴면자원이 놀이 소재로 배분되고 있을 거고 그 역할을 자원이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교육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관련 연구도 멈추지 않고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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