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이정효 감독 향한 ‘원조 테크니션’ 최문식의 극찬 “자기 밥그릇 걸고 자기 철학 펼치는 배울 점 많은 지도자” [이근승의 믹스트존]
5월 21일 충청남도 아산시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충남아산프로축구단과 수원 삼성의 경기. 킥오프 전부터 경기 영상을 보고 또 보며 무언가를 적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최문식(53) 한국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회 기술연구그룹(TSG) 위원이었다.
최 위원은 한국 최초 테크니션으로 불린 국가대표 미드필더였다. A매치 37경기 9골을 기록했던 최 위원은 포항 스틸러스, 전남 드래곤즈, 오이타 트리니타(일본), 수원 삼성 블루윙즈, 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의 전신)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엔 포항, 전남, 한국 연령별 대표팀(U-17~23), 대전 시티즌(대전하나시티즌의 전신), 연변 FC(중국), 클란탄 FC(말레이시아)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최 위원은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기술’을 중시한다. 최 위원이 맨체스터 시티 경기를 빠짐없이 챙겨보면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축구 철학과 스타일을 배우고자 하는 건 이 때문. MK스포츠가 최 위원과 올 시즌 K리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지난해 10월부터 TSG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오늘(21일)은 충남아산과 수원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Q. 위원별 경기 일정은 어떤 식으로 짜는 겁니까.
연맹에서 K리그1, 2 관계없이 위원별 경기를 배정합니다. 우린 경기가 배정되면 본격적인 분석 준비에 나서죠. 지난 경기를 돌려보고, 여러 기록을 찾아봅니다.
Q. 지도자로 포항, 연령별 대표팀, 대전, 연변, 클란탄 등 다양한 팀에 몸담았습니다. TSG 위원으로 바라본 축구는 무엇이 다릅니까.
감독으로 팀을 맡았을 땐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팀을 이끌었습니다. 주도적이었죠. 지금은 다양한 팀의 경기를 분석합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축구를 본다랄까.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부족했던 부분,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확인하면서 한 단계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Q. “객관적인 시각으로 축구를 본다”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습니까.
그 팀의 있는 그대로를 보는 거예요. 제가 팀을 맡았을 때 가졌던 생각, 철학 등을 완전히 배제한 채 말이죠. 경기를 마친 뒤엔 그런 생각은 해봐요. ‘내가 만약 저 팀의 감독이었다면 어떤 축구를 했을까. 이 상황에선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개성이 뚜렷한 선수가 여럿일 땐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까’ 하는 등의 생각이죠.
섣불리 판단하기가 어려운 리그인 듯합니다. K리그1부터 보자면 12개 팀의 전력 평준화가 이루어진 듯합니다. 선두에 올라 있는 포항, 색깔이 뚜렷한 광주 FC, 김기동 감독의 색깔을 입혀가고 있는 FC 서울,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반등을 준비 중인 전북 현대를 눈여겨 보고 있는데요. 이 팀들은 지금보다 더 발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 시즌 K리그2는 전력 차가 심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는 전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의 전력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가 중요합니다. K리그2 13개 팀이 한 번씩 붙어봤잖아요. 서로의 장단점을 명확히 압니다. 2라운드 로빈이 끝났을 땐 올 시즌 순위의 대략적인 윤곽이 잡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K리그1을 예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향 평준화가 아닌 하향 평준화가 된 듯하다’고 하시는 분이 꽤 있습니다. 이 의견에 관해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분명한 건 팬들의 눈높이는 높아졌다는 거예요. 더 이상 결과만 내선 안 된다는 얘기죠. 구단이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서 나아갈 필요가 있어요. 그 방향성에 맞는 경기력과 결과가 필요해졌습니다. 상위권에 있는 팀들과 부진을 면치 못하는 팀들을 잘 보세요. 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감독이 어떤 축구를 하려고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Q. 팬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명확한 방향 설정과 과정이 중요하다는 얘기군요.
국가대표팀을 예로 들어 볼게요. 축구 팬들은 더 이상 결과만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서 어떤 축구를 펼칠 것이냐를 중요시합니다.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따른다는 걸 지난 월드컵에서 확인하기도 했고요. 팬들에게 지금보다 발전할 수 있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그게 명확한 방향성과 과정인 것 같아요.
후배지만 정말 멋진 지도자라고 봅니다. 이정효 감독은 광주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했어요. 그리고 흔들림 없이 나아갑니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지도자가 자기 밥그릇을 걸고 자신의 철학에 따라서 나아가는 겁니다.
이 감독은 결과물까지 내면서 수많은 팬의 박수와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이 감독 같은 지도자가 많아질수록 한국 축구가 더 단단해지고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배울 점이 아주 많은 지도자예요.
Q. 선수, 지도자, TSG 위원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계시잖아요. 당장 K리그 팀을 맡는다면 어떤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실 겁니까.
선수 시절 기술을 중시했습니다. 지도자가 된 후에도 변함이 없어요. 선수가 재밌게 하는 축구가 팬들에게도 재밌습니다. 다만 세계 모든 팀이 맨체스터 시티와 같은 축구를 할 순 없잖아요. 현실적인 부분도 어느 정도 인정해서 팀에 맞는 축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설정한 방향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아산=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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