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235] 의(議)와 논(論)으로 보는 한국 정치
한문 번역서들을 보면 대부분 의(議)도 ‘의논하다’로 번역하고 논(論)도 ‘의논하다’로 번역하고 있다. ‘논의하다’로 번역하기도 한다. 잘못이다. 의(議)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논(論)은 지나간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다행히 기존 표현들을 보면 그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의(代議) 민주주의라 하지 대론(代論) 민주주의라는 말은 아예 없다. 반대로 여론(輿論) 조사는 있어도 여의(與議) 조사는 없다. 선거에서도 우리는 의원(議員)을 뽑는 것이지 논원(論員)을 뽑지 않는다. 의(議)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이고 논(論)은 자격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의(議)보다 논(論)이 힘을 갖는 분야가 두 곳 있다. 학계와 법조계이다. 논문(論文)이라고 하지 의문(議文)이라 하지 않고 논고(論告)라고 하지 의고(議告)라고 하지 않는다. 판사가 내리는 판결문은 논(論)이지 의(議)가 아니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법조인 과잉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이재명 대표, 조국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그리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까지 모두 법률가 출신이다. 21대 국회에서 46명인 법조인 출신이 22대에서는 60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국민들 일반 생각과 동떨어지게 되는 이유는 바로 미래보다는 과거에 힘을 쏟기 때문이다. 미래를 향해 의(議)를 만들어내는 훈련을 받은 바 없기에 무의식중에 과거를 향한 일에만 힘을 쏟는다. 대통령이 2년이 넘도록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공정과 상식이라는 법률가의 잣대에 머무는 것도 그렇고 의견을 내야 할 야당 의원들이 지난 일에 대한 특검을 양산하는 것도 과거 지향 법률가 마인드 표출로 볼 수밖에 없다.
법률가들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정치를 시작했으면 논(論)에서 벗어나 의(議)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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