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초국경 시대, 직구 금지 논란에 더해

박병진 2024. 5. 2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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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직구 금지 사흘 만에 철회
민심 동떨어진 정책 일방 추진
소통 부재·탁상행정, 난맥 자초
불신 커진 책임은 대통령의 몫

그는 평소 중국산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요즘 들어선 중국발 직접구매(직구)를 애용한다. 오죽했으면 부인이 “알리 왔어요”라며 아침잠을 깨울 정도란다. 낚시가 취미인 지인 얘기다. 알리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은 이제 우리 안방 깊숙이 침투했다. 국내 제품에 비해 워낙 싸다 보니 처음에는 속는 셈 치고 주문했다가 기대 이상의 가성비에 호응이 이어진 결과다. 일상 생활용품부터 전자기기까지 안 파는 물건이 없다. 1000원짜리 물건도 무료 배송을 지원한다. 이러니 배달에 오랜 시간이 걸려도, 짝퉁·가품 논란에도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영화 ‘범죄도시’의 마동석을 광고모델로 내세웠다고 이뤄진 일은 아닐 게다.

글로벌 무역구조가 기업 간 거래(B2B)에서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로 빠르게 이동한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기술, 물류 배송 체계 변화와 차별화된 쇼핑 경험이 결합했다. 이제 초국경 소비시장 도래는 현실이다. 포화 상태의 자국 시장에서 해외로 눈을 돌린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진격은 전 세계 유통시장을 좌지우지한다. 미국의 아마존·이베이 같은 거대 기업마저 중국산 초저가 공세 앞에 맥을 못 출 정도다. 우리로서도 달가울 리 없다. 국내 제조 및 유통 업체, 중소 상인들 사이에서 “이대론 다 죽는다”는 아우성이 빗발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막을 순 없는 노릇이다. 전 세계가 겪는 문제다. 중국과의 무역 분쟁에 나서려면 보복을 감수해야 한다. 이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파동 때 경험하지 않았나. 쉽지 않다. 중국의 시장 공략에 맞서려면 국내 물류업과 이커머스 플랫폼이 더욱 분발해야 한다. 위기의식을 갖고 차별화된 전략 수립과 벤치마킹은 기본이다. 정부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
박병진 논설위원
최근 정부가 유모차와 완구 등 국가통합인증마크(KC) 인증이 없는 80개 제품의 해외 직구를 금지하는 정책을 내놨다가 사흘 만에 철회했다. 대통령실이 나서 고개까지 숙였다. 왜 그랬을까. 중국산 일부 직구 상품의 위해성은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나 법적으로 제약이 어려운 해외 직구 상품에 KC 인증 규제를 들이대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발상 자체가 성급하기 그지없다. 처방에 급급해 설익은 정책을 내놓다 보니 역풍을 맞는 건 당연지사다.

과거 한국은 국내 유통기업들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2010년대 들어 상황이 반전되기까지. ‘글로벌 호구’라고 불릴 정도로 과도하게 마진이 붙은 상품 가격에 분노하고, 한 푼이라도 싼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해외 직구라는 시장을 개척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직구족(族)은 해외 유명 의류브랜드가 한국에서의 홈페이지 접속과 한국 신용카드 사용을 막자 해외 본사에 항의 이메일을 보내고, 온라인 불매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이런 직구족의 집단 반발에 업체들이 백기를 들었다. 불만을 표출하고 확산시키는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얘기다. 정부가 화들짝 놀라 직구 금지를 철회한 배경이다.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정부의 직구 대책이 발표되기까지 제대로 된 당정협의가 없었다. 심지어 지난 3월7일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해외 직구 종합대책 태스크포스(TF)에서 “소비자 반발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나왔는데도 정책 발표 때까지 2개월 동안 20차례에 걸친 회의 과정에서 소비자 의견 수렴 과정은 생략됐다고 한다.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이었던 셈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7월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을 두고 논란이 일자 당시 여당에선 “철저히 당정협의를 거친 정책들만 발표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집권 2년 차인 지난해는 ‘주69시간 근로제’, ‘연구개발(R&D) 예산 축소’ 등 설익은 정책이 혼선을 불렀다. 올해도 당정 소통 부재와 탁상행정은 여전하다. 그제는 고령자의 야간운전 등을 제한하는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오해”라며 한발 물러섰다. 성급한 발표→여론 분노→철회 또는 진화의 반복이다. 정부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책임은 오롯이 대통령의 몫이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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