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검사 위에 여사’ 나라, 부끄럽다
5공 때 ‘육사 위에 여사’ 같다… 야권 조롱
관저 정치·비선 논란 왜 끊이질 않나
국민 마음 읽는 대통령으로 돌아오시라
그런데 다행이다. 21일 조사받은 권성희 씨는 마침 변호사였다. “범죄의 증인이나 증거를 가진 국민은 수사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가 신의 목소리를 듣고 제보했다는 것도 신기하고 신비롭다. 3일 ‘4402’라는 소리를 듣고 사사공의, 즉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의(公義)를 취하라는 의미로 해석했는데 때마침 이원석 검찰총장이 디올백 신속 수사 지시를 내렸다는 뉴스를 접하고 언론에 제보했다는 거다.
보통 사람도 이럴진대 윤 대통령은 사사로움 때문에 공의를 버리는 듯한 모습이다. “윤석열의 사전엔 내로남불은 없을 것”이라고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를 수락하며 연설하더니, 자신이 당했던 ‘총장 패스 인사’ 판박이로 김 여사 관련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지휘부를 싹 갈아버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도 인도 ‘단독 외교’로 논란인데 자그마한 파우치 하나가 뭐 그리 중하냐고 볼 수도 있다. 그 문제는 그 문제대로 수사든, 특검이든 규명할 일이다. 그러나 김 여사 문제는 이번 총선에서 국힘 참패에 큰 영향을 미친 데다 앞으로 우리 삶도 좌우할 수 있어 그냥 넘기기 어렵다.
2022년 대선 때 윤 대통령을 찍었으나 4·10총선에서 민주당 지지로 변심한 이들, 특히 수도권 유권자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이슈가 디올백 문제였다(동아시아연구원 민주주의연구센터 소장 강원택 서울대 교수 최근 연구). 이종섭-황상무 논란, 물가 상승, 의사 파업은 그다음 문제였다.
물론 윤 대통령은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을 사과하긴 했다. 검찰 수사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오해가 일어날 수 있어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그러고는 검찰 수사 지휘부를 측근으로 교체한 것은 대국민사과를 뒤엎은 것과 다름없다. 16일 153일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뒤 공개 일정을 계속하는 김 여사의 표정은 내 남편, 검찰공화국 대통령이 다 정리했다는 팽팽한 자신감이었다.
비교하기 내키진 않지만 5공화국 때 나돌던 유행어가 ‘육사 위에 여사’였다. 신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를 빗대 나온 말이다. 요즘 야권에선 ‘검사 위에 여사’라고 조롱한다. 정부가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선택적 법 집행인데 이래서야 검찰이 암만 법과 원칙대로 수사한대도 공정하다고 인식될 수 없다. 사회적 정의로서의 공정성 인식이 시민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남편 잘 만나 수사도, 처벌도 안 받는 나라라니 과거 대통령 탄핵 때 외치던 “이게 나라냐” 소리가 절로 나올 판이다.
‘검사 위 여사’의 나라가 겁나는 것은 이 모든 일이 윤 대통령 취임 전 공개된 김 여사 녹취록대로 진행되고 있어서다. 김 여사는 인터넷 매체와의 통화에서 비판적 매체를 거론하며 “내가 권력을 잡으면 거긴 무사하지 못할 거야. 권력이라는 게 우리가 안 시켜도 검찰이 알아서 입건해요. 그래서 무서운 거지” 말한 바 있다. ‘내’가 권력을 잡는다는 인식도 위험하지만 권력의 주구라는 검찰 권력에 대한 통찰은 더욱 섬뜩하다.
윤 대통령의 ‘관저 정치’가 깊어지고 국힘이 총선에 패배한 뒤, 비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불길하기 짝이 없다. 박영선·양정철 기용설이 나오고 함성득-임혁백이 대통령의 ‘이재명 대통령 밀어주기 거래’ 같은 발언을 밝혔는데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도 공교롭다. 이 때문에 용산 근처에선 VIP1, 2를 넘어 ‘VIP제로’ ‘대리 격노’ 소리가 공공연히 나오는 것이다.
야권에선 마침내 탄핵을 공식 거론했지만 ‘개딸들의 나라’는 지금보다 더 비민주적이고 끔찍할 것이 틀림없다. 아직 희망을 놓지 않고 싶은 이유다. 3년은 한참 길다. 그래서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저에 대한 지지와 성원이 언제든지 비판과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로 임하겠다”던 윤 대통령의 국힘 후보 시절 연설을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지도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아쉬운 대로 제2부속실과 특별감찰관 설치라도 서두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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