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오세훈 '대권 잠룡'들 벌써 격돌...'여권 리더십 공백' 노렸나
최근 정부 해외 직구 KC인증(국가통합인증마크) 규제 논란에 대해 여권의 빅샷들 간 설전이 벌어진 것을 놓고 현재 여권의 리더십 공백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4·10 총선 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당내 권력의 구심점이 사라진 가운데 차기 대권주자 간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었다. 유 전 의원은 지난 18일 오전 페이스북에 "KC인증이 없는 80개 제품에 대해 해외직구를 금지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안전을 내세워 포괄적 일방적으로 해외직구를 금지하는 것은 무식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잠행 중이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가세하며 주목도가 높아졌다. 한 전 위원장은 같은 날 밤 페이스북에 "개인 해외직구시 KC 인증 의무화 규제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여러분, 국민뿐"이라고 첫 글을 올린 후 약 한 달 만에 침묵을 깬 것이다.
한 전 위원장과 거의 동시에 나경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당선인도 'KC 미인증 제품 해외 직구 금지, 이틀 만에 보류'라는 기사를 공유하고 "다행이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졸속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정책을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했을 정도로 실책임이 명확한 사안이었지만, 여권 주요 정치인들이 앞다퉈 비판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윤 대통령 지지율이 굉장히 흔들리고 있어서 누군가 기선제압을 하고 여론을 선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대통령 지지율로 보면 집권 5년차 수준에 가깝기 때문에 질세라 앞다퉈 정부를 비판하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번 논란은 자유무역이란 가치를 놓고 벌어진 보수정권의 정체성 논란으로 볼 수 있다"며 "더구나 2030세대가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분석했다.
이번 논쟁은 잠룡인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부 입장을 옹호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오 시장은 지난 20일 "함께 세심하게 명찰추호(사소한 일도 빈틈없이 살핌)해야 할 때 정부 정책 전체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하는 것은 여당 중진으로 해야 할 처신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이에 유 전 의원이 "그럴 생각이라면 정부와 대통령실을 향해 해외 직구를 다시 금지하라고 똑바로 얘기하라. 그들을 향해선 말할 배짱이 없나"라고 맞받았다. 한 전 위원장도 오 시장을 향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건설적인 의견제시를 '처신' 차원에서 다루는 것에 공감할 분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처신이란 표현을 쓴 것은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여당 정치인들이 SNS로 의견제시를 하는 것은 가급적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온라인상이지만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오 시장과 한 전 위원장 간 설전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오 시장은 최근 서울지역 당선인과 낙선자, 비례대표 당선인을 만난 데 이어 오는 24일 경기도 여당 당선인들을 초청해 오찬을 한다. 대선을 염두에 두고 당내 세력 확장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엄 소장은 "총선 후 대통령의 리더십이 악화된 데다 당 지도부도 사실상 공백 상태다. 여권의 리더십 공백상태에서 차기 지도자를 노리는 경쟁이 조기에 과열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야당이 공공연하게 탄핵을 얘기하는 상황에서 대선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계산하는 것"이라고 했다.
총선 이후 대권을 노리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연일 한 전 위원장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는 가운데 오 시장도 한 전 위원장을 타깃으로 삼고 반대편에 선 점이 주목된다. 엄 소장은 "홍준표도 오세훈도 한동훈만 끌어내리면 자기가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지지층을 확보한다는 심산인데 안 통한다는 게 홍 시장의 사례로 보여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오 시장은 지지율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했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공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누군가를 대선 후보가 안 되게는 할 수 있다. 대권에 나갔을 때 방해세력을 없앤단 차원에서 대통령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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