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날아다니고, 비명 소리 가득” …‘아수라장 난기류’ 싱가포르항공 사고 원인은?
“갑작스런 난기류 만나 대응 시간 부족”
지구 온난화가 난기류 키운다는 지적도
한국인 1명 탑승…부상자 명단엔 없어
“끔찍한 비명과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물건들이 공중에 떠다녔고, 나는 온몸이 커피로 뒤덮였다.”
21일(현지시간) 극심한 난기류를 만나 태국 방콕에 비상 착륙한 싱가포르항공 여객기에 타고 있던 영국인 브리튼 앤드 데이비스가 사고 당시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 비행기에 탔다는 승객 제리는 “자리를 벗어나 돌아다니던 사람들은 공중제비를 돌았고, 나와 아내는 천장에 머리를 부딪혔다”면서 “비행기가 급격히 떨어지기 전에도 아무런 경고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로 목을 다친 한 영국인 승객은 “내 아들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화장실에 있던 한 남자는 지붕을 들이받아 크게 다쳤다고 들었다”며 “가족 중 아무도 죽지 않은 것은 행운”이라고 했다.
다른 승객 자프란 아즈미르는 “휴대전화와 신발도 비행기 안을 날아다녔다”며 “비행기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사람들이 천장으로 튀어 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들은 머리에 큰 상처가 났거나 뇌진탕을 입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비상 착륙한 후 공개된 여객기 내부 모습을 보면, 기내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됐다. 비상용 산소마스크는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일부는 뜯어진 천장 덮개 등과 뒤엉켰다. 바닥에는 음식과 수화물 등 온갖 물건이 나뒹굴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사고 여객기가 이륙 후 10시간가량 고도 1만1300m에서 순항하던 중 미얀마 인근 인다만해 상공에서 약 3분 만에 고도 9400m까지 급하강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일기예보서비스 어큐웨더(Accuweather)는 “항로에서 빠른 속도로 발달한 뇌우가 극심한 난기류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며 “항공기 바로 앞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기장이 대응할 시간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온난화의 영향으로 이같은 난기류의 빈도와 위력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13년부터 관련 연구를 진행해 온 폴 윌리엄스 영국 레딩대학교 교수는 “향후 수십 년간 심각한 난기류가 두배, 혹은 세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며 특히 폭풍이나 구름 등 전조증상 없이 발생하는 ‘청천 난기류’가 2050~2080년에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고 CNN에 말했다. CNN은 난기류를 만난 경우 부상 위험을 줄이기 위해 좌석에 앉아있을 때는 항상 안전띠를 매야 한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항공은 방콕에 대체기를 보내 승객들을 본래 목적지인 싱가포르로 이동시키고 있다. 싱가포르 당국은 태국에 사고 조사 담당자를 보냈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도 조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사고가 난 여객기는 미국 보잉의 777-300ER 기종으로, 승객 211명과 승무원 18명이 타고 있었다.
방콕포스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날 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다쳤다. 사망자는 73세 영국 남성으로,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부상자 중 7명은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탑승자도 1명 있었지만 부상자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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