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동물·로봇이 하나 된 무대…뮤지컬 '천 개의 파랑'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천선란이 쓴 SF 소설 '천 개의 파랑'은 인간과 로봇, 동물의 연대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2035년 한국을 배경으로 종을 뛰어넘은 우정을 그려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소설의 인기가 높았던 만큼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2차 콘텐츠 제작에도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매체가 아니라 뮤지컬로 이 작품을 선보인다고 했을 때 일각에선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주인공인 콜리가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인 데다 그의 친구이자 동료인 투데이는 경주 레이스를 뛰는 말(馬)이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구현해 무대에 올릴지, 둘을 본 관객이 어색함을 느끼지 않고 극에 몰입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서울예술단이 지난 12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이고 있는 김태형 연출의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적절히 조합한 공연으로 이 같은 어려운 숙제를 풀었다.
콜리는 자동 로봇 대신 관절이 움직이는 160㎝ 크기의 수공예 인형으로 등장한다. 배우는 콜리의 몸을 조종하면서 대사와 노래, 표정 연기 등을 맡는다.
투데이는 실제 말 크기의 인형으로 무대에 선다. 말 아래에서 인형술사 두 명이 앞다리와 뒷다리를 각각 움직이고, 또 한 명의 인형술사는 머리 부분을 맡는다. 경마 장면에선 인형술사들이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투데이가 달리는 듯한 모습을 표현한다.
이 밖에 구조용 로봇, 맹인 안내 로봇, 청소 로봇 등은 실제 로봇을 투입해 무대를 이리저리 움직이게 했다.
극 초반부에는 콜리와 투데이를 조종하는 배우와 인형술사에게 더 눈길이 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 캐릭터에 어렵지 않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힘은 서사에서 나온다. 원작이 지닌 따뜻한 스토리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이 작품은 공정 오류로 인지 능력을 갖추게 된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가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투데이와 동료가 되는 장면으로 본격 시작된다.
둘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연전연승하지만, 경마장 직원은 투데이를 더 빨리 달리도록 하기 위해 콜리에게 채찍질하라고 종용한다. 투데이의 고통을 눈치챈 콜리는 일부러 낙마 사고를 내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어진 고장 난 로봇이 된다.
고등학생 연재가 우연히 콜리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오면서 둘 사이에 우정이 싹튼다. 연재는 언니 은혜와 함께 안락사 위기에 처한 투데이를 구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결함이나 상처를 안고 있다. 완벽한 기수가 되지 못하는 콜리, 빠르게 달릴 수 없는 투데이, 쉽사리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연재, 소아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하는 은혜, 젊은 시절 남편을 여의고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
그러나 이들은 모두 투데이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하나가 돼 상상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그 가운데에는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로봇 콜리가 있다.
관객은 순수한 콜리가 던지는 당연하지만 잊고 살던 질문을 들으며 정곡을 찔린다. "왜 빨리 달려야 하는가", "달리는 게 재밌으면 인간이 달리면 되는 것 아닌가" 같은 대사에선 부끄러움도 느껴진다.
캐릭터의 감정과 이야기를 녹인 넘버 덕에 감동은 배가된다.
콜리가 자신이 다른 로봇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모습을 그린 '천 개의 단어'는 신비하면서도 아이 같은 콜리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주인공의 노래는 아니지만, 연재와 은혜 자매의 엄마 보경이 부르는 '단 3퍼센트'에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3%라는 낮은 생존 확률에도 건물 붕괴 사고에서 구출된 그는 남편이 죽은 뒤 300%의 힘을 발휘해 살아가겠다고 이 곡을 통해 다짐한다. 딸들은 그런 엄마를 "다 괜찮다"며 위로한다.
원작자인 천 작가는 "'천 개의 파랑'은 3% 투성이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3%라는 것은 '0이 아니다'라는 뜻일 뿐"이라면서 "0이 아닌 이상 그것은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기회, 행복을 품고 있는 숫자"라고 전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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