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동물·로봇이 하나 된 무대…뮤지컬 '천 개의 파랑'

오보람 2024. 5. 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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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SF 소설 원작…로봇 '콜리'·경주마 '투데이' 인형으로 제작
뮤지컬 '천 개의 파랑' 무대 [서울예술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천선란이 쓴 SF 소설 '천 개의 파랑'은 인간과 로봇, 동물의 연대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2035년 한국을 배경으로 종을 뛰어넘은 우정을 그려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소설의 인기가 높았던 만큼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2차 콘텐츠 제작에도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매체가 아니라 뮤지컬로 이 작품을 선보인다고 했을 때 일각에선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주인공인 콜리가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인 데다 그의 친구이자 동료인 투데이는 경주 레이스를 뛰는 말(馬)이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구현해 무대에 올릴지, 둘을 본 관객이 어색함을 느끼지 않고 극에 몰입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서울예술단이 지난 12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이고 있는 김태형 연출의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적절히 조합한 공연으로 이 같은 어려운 숙제를 풀었다.

콜리는 자동 로봇 대신 관절이 움직이는 160㎝ 크기의 수공예 인형으로 등장한다. 배우는 콜리의 몸을 조종하면서 대사와 노래, 표정 연기 등을 맡는다.

투데이는 실제 말 크기의 인형으로 무대에 선다. 말 아래에서 인형술사 두 명이 앞다리와 뒷다리를 각각 움직이고, 또 한 명의 인형술사는 머리 부분을 맡는다. 경마 장면에선 인형술사들이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투데이가 달리는 듯한 모습을 표현한다.

이 밖에 구조용 로봇, 맹인 안내 로봇, 청소 로봇 등은 실제 로봇을 투입해 무대를 이리저리 움직이게 했다.

뮤지컬 '천 개의 파랑' 무대 [서울예술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극 초반부에는 콜리와 투데이를 조종하는 배우와 인형술사에게 더 눈길이 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 캐릭터에 어렵지 않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힘은 서사에서 나온다. 원작이 지닌 따뜻한 스토리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이 작품은 공정 오류로 인지 능력을 갖추게 된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가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투데이와 동료가 되는 장면으로 본격 시작된다.

둘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연전연승하지만, 경마장 직원은 투데이를 더 빨리 달리도록 하기 위해 콜리에게 채찍질하라고 종용한다. 투데이의 고통을 눈치챈 콜리는 일부러 낙마 사고를 내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어진 고장 난 로봇이 된다.

고등학생 연재가 우연히 콜리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오면서 둘 사이에 우정이 싹튼다. 연재는 언니 은혜와 함께 안락사 위기에 처한 투데이를 구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결함이나 상처를 안고 있다. 완벽한 기수가 되지 못하는 콜리, 빠르게 달릴 수 없는 투데이, 쉽사리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연재, 소아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하는 은혜, 젊은 시절 남편을 여의고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

그러나 이들은 모두 투데이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하나가 돼 상상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그 가운데에는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로봇 콜리가 있다.

관객은 순수한 콜리가 던지는 당연하지만 잊고 살던 질문을 들으며 정곡을 찔린다. "왜 빨리 달려야 하는가", "달리는 게 재밌으면 인간이 달리면 되는 것 아닌가" 같은 대사에선 부끄러움도 느껴진다.

뮤지컬 '천 개의 파랑' 무대 [서울예술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캐릭터의 감정과 이야기를 녹인 넘버 덕에 감동은 배가된다.

콜리가 자신이 다른 로봇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모습을 그린 '천 개의 단어'는 신비하면서도 아이 같은 콜리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주인공의 노래는 아니지만, 연재와 은혜 자매의 엄마 보경이 부르는 '단 3퍼센트'에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3%라는 낮은 생존 확률에도 건물 붕괴 사고에서 구출된 그는 남편이 죽은 뒤 300%의 힘을 발휘해 살아가겠다고 이 곡을 통해 다짐한다. 딸들은 그런 엄마를 "다 괜찮다"며 위로한다.

원작자인 천 작가는 "'천 개의 파랑'은 3% 투성이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3%라는 것은 '0이 아니다'라는 뜻일 뿐"이라면서 "0이 아닌 이상 그것은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기회, 행복을 품고 있는 숫자"라고 전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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