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투수는 완전히 잊어라”···투수 출신의 성공한 타자, 레전드 이호준이 장재영에게[스경x포커스]
김은진 기자 2024. 5. 22. 13:39
강속구 투수에서 타자로 변신한 장재영···레전드 이호준으로부터 들어본다
강속구 영건 장재영(22·키움)이 타자로 변신했다. 고교 시절부터 불 같은 공을 던져 2021년 계약금 9억원을 받고 1차지명으로 입단해 매우 큰 기대 속에 프로에 데뷔했으나 제구를 완성하지 못하고 1승으로 투수 경력을 마치기로 결정했다.
고교 시절 투수로서도, 타자로서도 빼어나게 잘 했던 장재영은 입단 4년차인 지금, 타자로 새 출발한다. 지난 21일에는 퓨처스리그에서 타자로서 첫 실전에 나가 바로 안타를 치며 또 다른 기대를 모으고 있다.
KBO리그에는 그동안 투수에서 타자로 변신한 선수들이 꽤 여럿 있었다. 고교 시절 투수였다가 프로 입단 이후 타자로서 성공한 선수들로 이승엽, 이대호 등이 늘 거론된다. 과거 이대진(당시 해태), 김광삼(당시 LG) 등 투수에서 아주 잠시 타자로 전향했던 사례도 꽤 많지만 다시 투수로 돌아간 그들의 타이틀은 투수다.
특히 프로에서 투수로 데뷔한 뒤 타자로 전향해 성공한 선수는 손에 꼽는다.
현역에는 SSG 하재훈이 있지만, 하재훈은 원래 타자였다. 미국 등 해외에서 타자로 뛰다 2019년 국내 복귀, SK에 입단해 투수로 변신하면서 세이브왕까지 오른 뒤 2022년부터 다시 타자로 뛰고 있다.
키움 이형종이야말로 대표적인 투수 출신 타자다. 서울고 에이스로 2007년 대통령배 대회 결승전을 통해 ‘눈물의 왕자’로 유명해진 채 2008년 LG에 1차 지명 입단한 이형종은 첫해 2경기에 나가 1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오랫동안 자리를 잡지 못했다. 1군에서 굉장히 오랜 공백기가 있었던 이형종은 군 복무까지 마치고 2016년 타자로 변신하면서 야구인생을 새로 출발해 현재 키움에서 뛰고 있다.
프로에서 투수로 데뷔한 뒤 타자로 전향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는 이호준 LG 수석코치다.
광주일고 에이스였고 중심타자이기도 했던 이호준은 1994년 해태에 입단해서는 투수로 뛰었다. 당시만 해도 시속 140㎞대를 던지면 강속구 투수였다. 김응용 감독이 지휘하던 해태는 키가 크고 강속구를 던지는 이호준을 좋은 투수감이라고 여겼지만 이호준은 투수보다 타자를 선호했다. 첫해 8경기에 등판해 12.1이닝을 던지고 승패 없이 평균자책 10.22를 기록했다. 신인이고 기록이 좋질 않으니 패전처리조로 주로 등판했었다.
이호준 코치는 “그때만 해도 학교 때는 투수들이 다 타격도 할 때니까, 나는 타자 하고 싶다 생각하면서 입단했는데 투수를 하라고 하셨다. 선택권이 없었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타자를 하고 싶었다. 성적도 그냥 그랬고, 마지막에 LG 김재현이 신인 최초 20홈런-20도루를 했을 때 그 20홈런을 내가 맞았다. 나는 실패자라는 생각에 그때부터 결국 방황을 했다. 야구장도 나가기 싫어서 많이 돌아다녔다.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었다. 마운드에 올라가면 시간이 갑자기 안 가는 느낌이고 지금으로 치면 공황장애처럼 혼자 끙끙댔다. 당시 2군 감독이 김성근 감독님이셨는데 나를 좋은 투수로 키워보려고 애를 쓰셨지만, 나를 많이 찾아다니셨다”
타자가 되고 싶어 방황했던 이호준의 경력을 보면 투수로서 성적은 신인이었던 1994년이 전부다. 2년차였던 1995년의 1군 성적은 없고 1996년부터 타자로서 커리어가 시작된다.
이호준 코치는 “방황하고 다닐 때 팀에서 타자를 하게 해준다고 했다. 내 기억에 그래서 그날 처음 대전에서 한화랑 2군 연습경기에 출전했다. 1년 넘게 방망이 잡지 않았다가 그날 처음 연습하고 8번 우익수로 나갔는데 홈런을 쳤다. 감독님도 처음에 타자 하고 싶다 할 때는 쳐다도 안 보시다 그 뒤부터 조금 관심을 가져주셨다. 타자가 된 뒤로는 한 번도 방황하지 않고 열심히 운동했다”고 웃었다.
그렇게 투수로 출발해 타자가 된 이호준은 2017년까지 현역으로 뛰며 통산 2053경기에 출전해 1880안타를 치고 337홈런 1265타점에 타율 0.282를 남긴 레전드 선수가 되었다.
투수에서 타자로 변신한 경력에서도 ‘레전드’인 이호준 코치는 장재영의 지금 변신에서 과거의 자신과 꽤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호준 코치는 “나는 처음에 투수할 때, 나름대로 학교 때 에이스였고 하니까 가서 어느 정도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가 생각대로 안 되니까 더 마음을 못 잡았다. 장재영도 대표팀 때 타자로 더 많이 뛰었고 굉장히 잘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워낙 그렇게까지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드무니까 투수를 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마 장재영도 투수를 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봤을 거다. 해봤는데 안 되니까 그런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은 다른 케이스지만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장재영에게 애정어린 마음을 전했다.
이호준 코치는 “투수로서 아마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었다. 그렇지만 타자를 한다고 스트레스가 안 올 수는 없다. 뭔가 안 풀리는 게 생기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타자를 하려면 투수는 완전히 잊어버려야 할 것 같다. ‘하다 안 되면 다시 투수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면 아마 안 될 거다. ‘나는 정말 이제 타자로서 마지막 승부를 건다’는 마음으로 올인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제는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신인이라는 마음으로 정말 신나서 재미있게 야구를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강속구 영건 장재영(22·키움)이 타자로 변신했다. 고교 시절부터 불 같은 공을 던져 2021년 계약금 9억원을 받고 1차지명으로 입단해 매우 큰 기대 속에 프로에 데뷔했으나 제구를 완성하지 못하고 1승으로 투수 경력을 마치기로 결정했다.
고교 시절 투수로서도, 타자로서도 빼어나게 잘 했던 장재영은 입단 4년차인 지금, 타자로 새 출발한다. 지난 21일에는 퓨처스리그에서 타자로서 첫 실전에 나가 바로 안타를 치며 또 다른 기대를 모으고 있다.
투수→타자 전향한 사례는?
KBO리그에는 그동안 투수에서 타자로 변신한 선수들이 꽤 여럿 있었다. 고교 시절 투수였다가 프로 입단 이후 타자로서 성공한 선수들로 이승엽, 이대호 등이 늘 거론된다. 과거 이대진(당시 해태), 김광삼(당시 LG) 등 투수에서 아주 잠시 타자로 전향했던 사례도 꽤 많지만 다시 투수로 돌아간 그들의 타이틀은 투수다.
특히 프로에서 투수로 데뷔한 뒤 타자로 전향해 성공한 선수는 손에 꼽는다.
현역에는 SSG 하재훈이 있지만, 하재훈은 원래 타자였다. 미국 등 해외에서 타자로 뛰다 2019년 국내 복귀, SK에 입단해 투수로 변신하면서 세이브왕까지 오른 뒤 2022년부터 다시 타자로 뛰고 있다.
키움 이형종이야말로 대표적인 투수 출신 타자다. 서울고 에이스로 2007년 대통령배 대회 결승전을 통해 ‘눈물의 왕자’로 유명해진 채 2008년 LG에 1차 지명 입단한 이형종은 첫해 2경기에 나가 1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오랫동안 자리를 잡지 못했다. 1군에서 굉장히 오랜 공백기가 있었던 이형종은 군 복무까지 마치고 2016년 타자로 변신하면서 야구인생을 새로 출발해 현재 키움에서 뛰고 있다.
투수로 프로 데뷔 뒤 타자 전향, 최고의 성공 사례는 이호준
프로에서 투수로 데뷔한 뒤 타자로 전향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는 이호준 LG 수석코치다.
광주일고 에이스였고 중심타자이기도 했던 이호준은 1994년 해태에 입단해서는 투수로 뛰었다. 당시만 해도 시속 140㎞대를 던지면 강속구 투수였다. 김응용 감독이 지휘하던 해태는 키가 크고 강속구를 던지는 이호준을 좋은 투수감이라고 여겼지만 이호준은 투수보다 타자를 선호했다. 첫해 8경기에 등판해 12.1이닝을 던지고 승패 없이 평균자책 10.22를 기록했다. 신인이고 기록이 좋질 않으니 패전처리조로 주로 등판했었다.
이호준 코치는 “그때만 해도 학교 때는 투수들이 다 타격도 할 때니까, 나는 타자 하고 싶다 생각하면서 입단했는데 투수를 하라고 하셨다. 선택권이 없었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타자를 하고 싶었다. 성적도 그냥 그랬고, 마지막에 LG 김재현이 신인 최초 20홈런-20도루를 했을 때 그 20홈런을 내가 맞았다. 나는 실패자라는 생각에 그때부터 결국 방황을 했다. 야구장도 나가기 싫어서 많이 돌아다녔다.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었다. 마운드에 올라가면 시간이 갑자기 안 가는 느낌이고 지금으로 치면 공황장애처럼 혼자 끙끙댔다. 당시 2군 감독이 김성근 감독님이셨는데 나를 좋은 투수로 키워보려고 애를 쓰셨지만, 나를 많이 찾아다니셨다”
타자가 되고 싶어 방황했던 이호준의 경력을 보면 투수로서 성적은 신인이었던 1994년이 전부다. 2년차였던 1995년의 1군 성적은 없고 1996년부터 타자로서 커리어가 시작된다.
이호준 코치는 “방황하고 다닐 때 팀에서 타자를 하게 해준다고 했다. 내 기억에 그래서 그날 처음 대전에서 한화랑 2군 연습경기에 출전했다. 1년 넘게 방망이 잡지 않았다가 그날 처음 연습하고 8번 우익수로 나갔는데 홈런을 쳤다. 감독님도 처음에 타자 하고 싶다 할 때는 쳐다도 안 보시다 그 뒤부터 조금 관심을 가져주셨다. 타자가 된 뒤로는 한 번도 방황하지 않고 열심히 운동했다”고 웃었다.
그렇게 투수로 출발해 타자가 된 이호준은 2017년까지 현역으로 뛰며 통산 2053경기에 출전해 1880안타를 치고 337홈런 1265타점에 타율 0.282를 남긴 레전드 선수가 되었다.
새 출발하는 장재영에게 “투수는 잊어야 성공한다”
투수에서 타자로 변신한 경력에서도 ‘레전드’인 이호준 코치는 장재영의 지금 변신에서 과거의 자신과 꽤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호준 코치는 “나는 처음에 투수할 때, 나름대로 학교 때 에이스였고 하니까 가서 어느 정도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가 생각대로 안 되니까 더 마음을 못 잡았다. 장재영도 대표팀 때 타자로 더 많이 뛰었고 굉장히 잘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워낙 그렇게까지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드무니까 투수를 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마 장재영도 투수를 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봤을 거다. 해봤는데 안 되니까 그런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은 다른 케이스지만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장재영에게 애정어린 마음을 전했다.
이호준 코치는 “투수로서 아마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었다. 그렇지만 타자를 한다고 스트레스가 안 올 수는 없다. 뭔가 안 풀리는 게 생기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타자를 하려면 투수는 완전히 잊어버려야 할 것 같다. ‘하다 안 되면 다시 투수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면 아마 안 될 거다. ‘나는 정말 이제 타자로서 마지막 승부를 건다’는 마음으로 올인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제는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신인이라는 마음으로 정말 신나서 재미있게 야구를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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