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백서[오후여담]

2024. 5. 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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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白書·white paper)는 원래 영국 정부의 연차경제보고서 표지가 흰색이었던 것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주로 경제 분야 보고서에 많이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 경제기획원이 간행한 '1962 경제백서'가 처음인데 '부흥백서' '노동백서' '외채백서' '북한백서' 등 다양한 보고서에 백서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로 경제와 외교 분야에서 발간됐던 백서가 이젠 정치권에서도 일반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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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백서(白書·white paper)는 원래 영국 정부의 연차경제보고서 표지가 흰색이었던 것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주로 경제 분야 보고서에 많이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 경제기획원이 간행한 ‘1962 경제백서’가 처음인데 ‘부흥백서’ ‘노동백서’ ‘외채백서’ ‘북한백서’ 등 다양한 보고서에 백서라는 이름을 붙였다. 프랑스에서는 황서(黃書), 이탈리아에서는 녹서(綠書), 러시아 제국에서는 귤서(橘書·orange book),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소련에서는 적서(赤書), 영국 의회와 일본에서는 청서(靑書)가 있다. 반대로 기밀을 지켜야 하는 문서는 흑서(黑書·black paper)라고 하며, 기밀까지는 아니지만, 비공식적이거나 열람이 어려운 문서는 따로 회색 문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경제와 외교 분야에서 발간됐던 백서가 이젠 정치권에서도 일반화됐다. 지방선거·총선·대선이 끝나면 주로 패배한 정당에서 백서를 발간해 패배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려 왔다. 백서에는 당 대표와 대선 주자 등의 잘잘못을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작업이다. 그래서 백서는 아주 극비리에 제작돼 공개되는 것이 상례였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에 패배한 새누리당은 극비리에 백서 발간 작업을 벌여 공개했다. 총선 공약·선거운동 전략·홍보 전략 등 분야별 패배 원인을 분석하고 수도권·부산경남(PK) 지역 주민의 여론조사, 공천 파동을 생생하게 경험·목격했던 경선 탈락자들의 인터뷰 등이 포함됐다.

제21대 총선 패배 이후에도 전문가들이 집필한 백서가 만들어져 중도층 지지 회복 부족 및 외연 확장의 실패, 퇴행적 보수 이미지, 표심 공략을 위한 효과적인 전략 부재 등을 패배 원인으로 꼽았는데, 이번 선거 패배 원인과 닮았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백서 발간 작업이 진행됐으나 이재명 대표의 책임 문제 때문에 흐지부지됐다.

그런데 이번 총선 참패 이후 국민의힘이 만드는 백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위원장을 맡은 조정훈 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시사했다가 비판이 일자 불출마를 선언하고, 내용도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책임을 기정사실화하고 만드는 조짐이다. 정작 제일 중요한 유권자가 왜 여당을 지지하지 않았는지 알아보는 절차는 빠졌다. 이미 오염된 백서는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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