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생애설계] 인생 2막에는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자
주된 직장에서의 퇴직하는 나이는 평균 50대 중반이다. 정년이 보장되는 공공기관이나 일부 기업의 경우 60세를 넘기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60세 이전에 인생1막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국가가 부여한 의무에서도 벗어난다. 남자라면 이미 오래 전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예비군, 민방위까지 졸업했다. 이는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더 이상 국가가 부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의무는 맡쳤으니 퇴직 후에는 일보다는 취미나 여가활동을 주로 하게 된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니 내야 할 세금도 줄어든다. 샐러리맨의 월급도둑이라는 근로소득세의 부담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헌법의 의무에서만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직장에서 부여된 책임과 의무로부터도 해방된다. 직장 안에서의 업무 책임과 부담, 자녀 양육과 가족 부양의 의무에서도 졸업하게 된다. 비로소 강제된 의무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지금부터야말로 인생의 황금기다.
그런데 현실은 사뭇 다르다. 퇴직자들과 상담을 할 때마다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퇴직 후 처음 몇 개월은 정말 좋았다고 한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쉬면서 해보고 싶었던 여행이나 취미활동, 배움에 시간을 할애한다. 모처럼의 휴식과 자유를 만끽한다. 그런데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 놀기만 하는 것이 반복되니 지루해지고 무언가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우울해진다. 미래가 불투명하니 두렵고 걱정이 앞선다.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났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이상 강제되는 의무가 없다면 이젠 스스로 자신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헌법 35조에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소위 환경보전의 의무라고 불리는 5번째 국민의 의무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환경문제가 중요해지다 보니까 헌법에 추가된 것 같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환경문제는 환경운동가 몇몇의 이슈가 아닌 지구촌 모두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가정에서의 환경보호를 위한 작은 실천부터 지역사회, 국가, 지구촌에 이르기까지 제도와 정책 등 거시적 방향의 실천과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 환경보전을 자신의 새로운 의무로 선택한다면 이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눈을 돌려보자. 앞서 언급한 환경문제 외에도 기후변화, 고령화, 저출산, 저성장, 양극화 등등.. 그 문제의 폭과 깊이가 심화되고 있다.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도 이런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들에게 “결혼해라, 아이를 낳아라”라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정말 자녀들이 결혼하고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기성세대부터 이런 문제해결에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들은 사실 기성세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 프로그램 중 “한블리”라고 있다. 블랙박스 동영상을 리뷰하면서 교통사고의 잘잘못 등을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매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바로 음주운전 사고이다. 경찰이 단속을 하고 법원이 형량을 높여도 음주운전은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상해 또는 살인이라는 범죄 행위이다. 그런데 화를 내고 욕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하되 시민으로서도 얼마든지 할 일이 있다. 음주운전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처벌수위를 높이는 법조항 개정 제안을 하고, 음주운전 피해자 및 가족을 돌보고, 하다못해 이런 범죄현장을 고발하고 SNS를 통해 이슈화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일을 인생2막의 새로운 의무로 부여하고 헌신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심각한 문제에만 눈을 돌릴 필요는 없다. 평생 배움에 한이 있는 분들은 노후에 학교에 진학하여 학업에 도전할 수도 있고 정말 하고 싶던 취미생활을 즐길 수도 있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도 새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이유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울산시 동구 사회적경제일자리센터에서는 최근 인생2막 준비학교인 “60플러스 학교” 졸업식을 거행했다. 지난 3월부터 10주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졸업식 날엔 개인별로 생애설계도를 만들어 발표하면서 마무리했다. 교육생들이 교육과 상담을 통해 하고 싶거나 해야 되겠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찾고 그것으로 인생사명을 만들고 비전을 만들어 발표했다. 교육생들의 얼굴에서 모처럼 굳은 의지와 열정 가득한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두가 시간만 축내면서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책임과 의무를 찾아보자. 스스로가 선택한 의무는 족쇄가 아니라 열쇠가 될 수 있다. 진짜 행복한 인생2막이 기다린다.
[윤형진 한국생애설계사(CLP), 칼럼니스트, 울산동구 사회적경제일자리센터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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