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잡아끄는 두 ‘대모’ … “단역이지만 헤매고 있다”
‘배우1’ ‘배우2’ 각각 맡아
연극 시작 알리고 끝 맺어
“연습 또 연습… 만족 없어”
극에 끼어드는 극중극 장면
“오래된 배우라 가능한 면도”
직접 섭외한 제작자 박명성
“관객 등받이 등 떼게 만들어”
“저들이야말로 시대의 축도이자 압축된 연대기!”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주인공 햄릿이 극중 ‘배우들’을 보면서 던지는 탄성. 다음 달 9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햄릿’(연출 손진책)의 세 번째 시즌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이보다 더 걸맞은 대사는 없을 것 같다. 60년 이상 연극판을 지켜 왔던 이호재·전무송·박정자·손숙을 비롯해 김재건, 정동환 등 베테랑 배우들이 한 무대에 오른다.
연극 ‘햄릿’은 셰익스피어 원작과 도입부터 다르다. 원작 중반부에 등장하는 ‘배우 1’ ‘배우 2’가 연극에서는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연극계의 거목 박정자와 손숙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단역’을 연기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연극을 제작한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와 함께 두 배우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지난 20일 만났다.
박정자는 인터뷰 중 “어, 춥다! 뼈가 시리게 추워!”라며 극의 시작을 알리는 자신의 첫 대사를 읊었다. 이어 “중요하다, 쉽지 않다”며 “사실 우리도 헤매고 있다”고 웃었다. 박정자와 함께 연극의 문을 열고 나서는 손숙은 이 장면 등을 두고 “엄청 힘이 든다”고 했다. 한두 마디로 관객의 오감을 연극 무대로 잡아끌어야 하는 것이 두 배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박정자는 “연극 준비를 하다가 우리끼리 지능지수(IQ)가 한 자릿수인가 농담을 할 때가 있다”며 “똑같은 장면을 날마다 똑같은 시간에 모여 똑같이 연습한다”고 했다. 손숙은 “만족은 없다”며 “연습한 만큼 보이는 게 연극”이라고 거들었다.
두 배우 섭외는 박 대표의 몫이었다. 그는 두 배우가 오르는 이 장면에 대해 “시작과 동시에 관객이 등받이에서 등을 떼도록 한다”며 “객석에는 긴장감, 몰입도, 서스펜스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주인공 햄릿을 연기하는 배우 이승주도 “연습하는 과정에서 두 분이 극의 시작을 맡고 끝을 맺는 게 이해가 됐다”며 “이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 지점하고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두 배우는 소위 ‘극중극’(극 안의 극)으로 부르는 장면을 강조했다. 배우 1은 ‘배우 왕’을, 배우 2는 ‘배우 왕비’를 연기하며 햄릿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거짓을 폭로하고 꼬집는다. “연극으로, 그자의 양심을 틀어쥐는 거다”라며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클로디어스를 겨냥한 햄릿의 대사대로다. 관객은 비극 도중에 통쾌한 느낌을 잠시 받기도 한다. 손숙은 이 장면과 관련해 “관객 입장에서 다소 과장스럽다는 느낌도 있을 것”이라며 “돌아가신 남편을 두 번 죽이는 거라고 (거트루드를 보며) 말하지 않느냐”고 웃었다. 박 대표 또한 “극의 분위기상 반전이 있는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극중극 배우’에 대해 박정자는 “자유로우면서도 연극에 객관적으로 끼어드는 역할”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오래된 배우니까 할 수 있는 면도 있다”며 “대사량 등에서 손숙과 부담이 많지는 않지만, 그것을 갖고 뭔가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고 했다.
손숙은 2년 전 두 번째 시즌과 비교해 “전혀 다른 햄릿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출연진뿐 아니라 새로운 무대·의상감독 등이 합류하면서 외양적으로 변화를 꾀했다는 것이 신시컴퍼니 측 설명이다. 박 대표는 “(두 번째 시즌은) 아쉬웠다”며 “이번에는 대극장에서의 3개월간 공연을 위해 단단히 준비했다”고 했다. ‘시대를 관통한 대가들, 다시 고전을 말하다’는 부제를 들고나온 것도 고전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한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햄릿 연기를 맡은 배우 강필석·이승주 등 후배와의 연기 호흡과 관련해 박정자는 “이 정도 세대를 뛰어넘어 한 무대를 만드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라고 했다. 특히 박정자는 “두 햄릿에게는 고기도 사 먹이겠다고 약속했다”며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다만 그는 “너 지금 ‘아동극’을 하는 거냐고 호통을 친 적도 있다”면서 “그렇게 부딪히는 과정으로 연극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손숙은 “어느 날 보면 (연습 부족으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른 날은 보면 (후배들이) 노력하고 그 안에 뭔가 쌓여 있는 게 보인다”며 “그렇게 연극은 가는 것 같다”고 했다.
박정자는 “결국 연극은 관객의 몫”이라고 했다. 그는 “관객을 통해 연극이 완성된다”며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한다고 해도, 깊이 들어와서 봐주는 관객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1963년 데뷔한 손숙… 그 무대 지켜본 박정자… 그해 태어난 박명성
■ 연극으로 맺어진 세사람의 인연
박 대표 “함께 작품하며 큰 공부”
1963년 동아방송에 입사했던 배우 박정자는 그해 이화여대 연극 무대의 ‘삼각모자’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던 손숙의 무대를 지켜봤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난 손숙은 박정자에게 “언니, 그 작품 봤어?”라고 물으며 놀랐다. 60여 년이 지나 두 배우를 연극 ‘햄릿’(연출 손진책) 무대로 섭외한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는 1963년생이다. 박정자는 이 인연을 두고 “기적”이라며 “연극을 하는 이들은 질기고 귀하고 소중한 인연”이라고 했다. 그는 “작품을 할 때마다, 이 팀으로 우리가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한다”고 했다. ‘햄릿’ 세 번째 시즌에 임하는 책임감의 표현이라고도 덧붙였다.
박 대표는 “두 분을 모시고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가 프로듀서로서는 큰 공부”라고 했다. 이어 “후진 양성에 도움이 되고, 그 후배들이 ‘연극의 정도’를 걷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인재의 밭’이 넓어진다”고 했다. 박 대표는 또 “정말 인간문화재와 같은 두 배우가 무대에 서면 광채가 난다”며 “관록 있는 배우의 연기를 무대에 올려 관객에게 행복감을 전하는 게 연극의 역할”이라고 했다.
손숙은 “우리 나이가 되면 이 작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또 “그렇기 때문에 한 작품, 한 작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고른다”면서도 “박 대표가 하자고 하면 한다”고 강한 신뢰를 보였다. 박정자도 “신시컴퍼니는 뮤지컬 ‘시카고’ ‘맘마미아’ 등 흥행작으로 알려졌지만, 그 수익으로 돈이 안 되는 연극을 만든다”며 “정말 귀한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두 사람은 “연극 정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며 “믿고 의지하게 된다”고 박 대표를 쳐다보며 함께 웃기도 했다. 박 대표는 연극계 두 ‘대모’의 말에 수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박정자는 “‘햄릿’ 두 번째 시즌에서 함께했던 배우 윤석화·권성덕이 이번에는 합류하지 못했다”며 “두 배우가 너무 좋은 배우인데 아쉽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그렇기에 오히려 두 사람을 생각하며 무대에 설 수 있는 지금을 ‘축복’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관객은 서둘러 무대를 봐야겠다’는 말에 박정자는 “이거 큰일이네”라며 “입장료 할인을 많이 해드려야겠다”고 웃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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