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릿은 뉴진스를 정말 따라했나?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아일릿이 뉴진스를 따라 했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나를 해임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일릿과 뉴진스는 정말 닮은꼴일까.
안무는 일부러 '대놓고’ 따라 해 화제성을 노린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룹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콘셉트에 대해 특히 말이 많은 점은 이제 막 데뷔한 아일릿이 풀어야 할 과제다. 현재 음악을 제외한 뮤직비디오나 콘셉트 포토, 프로모션 방식 등 전체적으로 아일릿에서 뉴진스가 떠오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콘셉트 비슷할 순 있으나 법적으론 문제 입증 어려워
다만 콘셉트가 비슷하다고 해서 표절로 판정 내리긴 쉽지 않다. 법무법인(유한) 대륜의 지식재산권 전문 김태환 변호사는 "아일릿과 뉴진스를 각각의 상품으로 봤을 때 유사하다 볼 여지가 높다"며 "하지만 콘셉트의 측면에서 상당히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법적 판단에 근거하여 보기 위해서는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는지, 부정경쟁방지법을 침해한 것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일단 콘셉트는 '아이디어’의 영역으로 저작권법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저작권에서 이를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이라 하는데, 저작권은 보호 대상을 '표현’에 한정하며 '아이디어’를 보호하지는 않는다. 이때 전체적인 콘셉트가 아닌 콘셉트를 이루고 있는 각각의 요소인 음악, 안무, 사진저작물 등 다른 저작물의 영역에서 실질적 유사성과 의거 관계가 인정된다면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 다만 김태환 변호사는 "두 그룹의 노래 가사와 멜로디가 다르고, 음악의 흐름에 따른 개별적인 안무도 세부적으로 표현을 달리하는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며 "이를 저작권 침해 소송으로 진행하게 될 경우 법적 방어 논리가 다수 존재할 것으로 판단돼 저작권의 침해를 인정받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정경쟁방지법 측면에서 살펴봐도 애매하다. 뉴진스와 아일릿의 경우에서 문제시될 조항은 영업 표지 등 혼동행위, 아이디어 탈취행위, 성과 등 무단도용행위 등이 있다. 이에 대해 김태환 변호사는 "피해자 측에서 '아이디어를 탈취한 자가 그 아이디어를 몰랐거나 동종 업계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까지 입증해야 하는데, 특수하거나 특이하다는 점까지 증명해야 하므로 쉽지 않다"면서 "뉴진스의 콘셉트가 보호받을 수 있는 대상인지에 대해서도 '고유의 성과’ 부분을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콘셉트를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이 전부 발표되지 않은 새로운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하지만 그래도 한 끗 차이를 만들어내려고 노력은 해야 하고, 그 노력이 보인다면 비슷하다고 느낀 점을 문제 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일릿과 뉴진스 표절 논란은 하이브의 도덕성 문제로도 연결된다. 김태환 변호사는 "창작이나 예술과 같은 영역에서 콘셉트의 카피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경쟁사도 아닌 모기업에서 콘셉트를 카피했다고 논란이 나온 것은 도덕의식, 윤리의식 측면에서 비난받기에 충분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지붕 아래 유사성은 당연한 것?
실제로 콘셉트의 유사성 정도는 둘째 치고 '같은 모기업을 둔 레이블끼리 이런 표절 논란을 일으켜도 되는가’의 문제를 두고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김영대 평론가는 '앰플리파이드’ 팟캐스트에서 "지금의 하이브는 신을 선도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데, 뭔가를 제시한다는 느낌보다 자신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상태를 (반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아쉬워했다.하지만 같은 하이브 레이블들이라 문제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다음 버전 휴대폰을 만들 때 전작을 참고해 제작하듯, 같은 회사에서 내놓은 아이돌 그룹은 유사성이 허용돼야 한다"며 "다른 기획사도 소속 그룹끼리 비슷한 점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민희진 대표는 현재 어도어를 이끌고 있긴 하지만 애초 2019년 하이브에 합류할 때 최고브랜드책임자(CBO)로 입사했다. 하이브로선 당연히 민희진의 역량을 전 그룹에 활용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모회사와 자회사들 관계이기 때문에 뉴진스의 성공 문법을 활용해 그룹 차원의 이익을 도모했다면 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일까. 현재 하이브 산하 각 레이블은 콘텐츠 제작을 전담하며, 홍보와 법무는 모회사인 하이브가 전담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김태환 변호사는 "하이브는 회사의 '안정적인 매출’을 위해 유사한 콘텐츠를 재생산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며 참고할 만한 판례로 2017년 선고된 SPP조선 판결을 소개했다. 당시 이낙영 전 SPP조선 회장은 채권단 관리하에 있는 SPP조선의 자금으로 계열회사 자재를 구매하고 SPP조선 고철을 다른 계열회사에 넘겨 손해를 초래했다는 배임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합리적 경영의 재량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다고 판단해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룹 내 계열사 간 지원 행위가 특정인이나 특정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룹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배임으로 볼 수 없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었다.
김태환 변호사는 "이 판례를 대입해볼 때 분야는 다르지만 하이브(모회사)가 아일릿(자회사 소속)에 대한 지원 행위로 볼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룹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지 등에 따라 '배임죄’의 성립 여부에 영향을 줄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만약 모회사 차원의 지원이 맞고, 또 그룹 공동의 이익으로 판단된다면 지금은 뉴진스의 성공 방식이 아일릿에게서 보이지만, 다음번에는 아일릿의 성공 방식을 차기 그룹에게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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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하이브 홈페이지, 뉴진스 · 아일릿 뮤직비디오
윤혜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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