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담배가 아니다”…‘뛰는’ 규제에 ‘나는’ 신종 담배 [취재후]

박영민 2024. 5.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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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속 제품은 시중에 판매 중인 이른바 '액상형 전자담배'입니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는데 왼쪽 제품은 담배가 아닙니다. 현행법상 '담배'가 아니라는 건데요. 이 제품에는 담배라는 식물과 무관한 '합성 니코틴'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말장난 같다고요? 무슨 뜻인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담배'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담배연초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 (담배사업법 제2조 1항)"

연초 잎에서 추출한 '천연 니코틴'이 들어간 제품을 담배로 규정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지방세법'과 '개별소비세법'은 담배의 범위를 조금 더 확장하고 있습니다.

가. 「담배사업법」 제2조에 따른 담배
나. 가목과 유사한 것으로서 연초(煙草)의 잎이 아닌 다른 부분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

즉 연초의 잎뿐만 아니라 줄기와 뿌리 등 다른 부분에서 원료를 추출한 것도 담배로 본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논란'이 되는 합성 니코틴은 뭘까요? 사실 니코틴은 담배라는 식물에서만 추출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인공적으로 화학물질 합성을 통해 제조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니코틴을 바로 '합성 니코틴'이라고 부릅니다.

■ '합성 니코틴' 제품, 규제 '사각지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과 비교하면 담배의 종류가 참 많이 늘었습니다. 라이터가 필수인 '일반 담배'에 이어 불을 붙일 필요가 없는 '궐련형 전자 담배'가 출시됐습니다. 그리고 유해성 논란 끝에 천연 니코틴을 원료로 한 '액상형 전자 담배'가 나왔습니다.

여기에 담배가 아닌 담배가 나오는데, 바로 합성 니코틴을 원료로 한 제품입니다. 최근엔 이런 제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점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기존 담배와 비교하면 취급이 자유롭습니다. 현행법상 '담배'가 아니다 보니 각종 규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합성 니코틴 제품에는 세금이나 부담금이 부과되지 않습니다. 경고 문구·사진을 부착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부의 소매인 지정을 받은 곳에서만 판매가 가능한 담배와 달리 온라인 판매도 가능합니다. 담배가 아닌 '공산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담배로 팔리고 있고 담배 대용품으로 쓰이지만, 담배로 규제받지 않는 겁니다.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부담금>
담배소비세·지방교육세·개별소비세·부가가치세·국민건강증진부담금
→ 담뱃값의 약 74% 차지


■ "합성 니코틴, 미성년자에겐 판매 금지"

담배는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팔 수 없습니다. '청소년 보호법'에서 규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는 2017년 전자담배를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고시했습니다.

▲ 청소년 유해 물건 : 전자담배 기기 장치류
니코틴 용액 등 담배 성분을 흡입할 수 있는 전자장치 및 그 부속품(배터리, 무화기, 카트리지 등)을 말하며 물건의 형태 및 제품명(Brand)에 상관없이 기능이 동일한 물건

▲ 청소년 유해 물건 : 담배와 유사한 형태인 피우는 방식의 기능성 제품으로 흡연습관을 조장 할 우려가 있는 흡입제류
【제품 예시】비타민 흡입제류, 흡연 욕구 저하제류 등

물론 술과 담배, 마약, 환각물질은 '청소년 유해약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여기에는 '중추신경에 작용해 습관성, 중독성, 내성 등을 유발해 인체에 유해작용을 미칠 수 있는 약물'도 포함돼 있습니다. 니코틴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합성 니코틴 제품도 청소년에게 판매할 수 없습니다. 또 이 제품을 사려면 담배와 마찬가지로 성인 인증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 "구하기 어렵지 않아"…청소년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증가세

성인 인증을 허위로 하고 온라인이나 무인 매장에서 구매하는 것까지 막기에는 인력과 예산 등이 부족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실제로 취재진이 만난 한 고등학생은 "학교에선 냄새가 나지 않는 액상 전자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많다"면서 "마음만 먹으면 합성니코틴 담배를 구하기 어렵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SNS나 오픈 채팅을 통해 구매하기도 하고, 미성년자인 걸 알면서도 조금 더 비싼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는 업주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2020년 2.7%였던 남학생의 전자담배 사용률은 2022년 4.5%까지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여학생도 1.1%에서 2.2%로 상승했습니다.

■ 진화하는 '합성 니코틴' 담배…"구별 못 해"


그렇다면 위 사진을 한 번 볼까요? 얼핏 보기에는 일반적인 전자제품 같습니다. 하지만 모두 액상형 전자담배들입니다. 특히 전자시계와 초록색 기계, 무선이어폰처럼 보이는 제품은 앞서 살펴본 '합성 니코틴' 제품입니다.

겉모습이 담배 같지 않다 보니 교사나 학부모가 학생이나 자녀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과일이나 커피, 탄산음료 등의 냄새가 나는 것도 한몫합니다. 손이나 머리카락에서 나는 담배 냄새로 흡연 학생을 잡아내던 '옛날'과는 너무나 달라진 겁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청소년들이 흡연을 시작하는 가장 큰 계기는 호기심"이라면서 "담배에 화려한 맛과 향을 강조하는 포장지가 쌓여 있다면 호기심을 자극하고, 당연히 청소년 흡연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센터장은 "국가 차원에서 발표하는 청소년 흡연율은 학교 안에서 조사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과소평가돼 있다"며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만나서 얘기해 보면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문제와 염려들은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미국에선 KBS의 '아침마당' 같은 프로그램에서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전자 담배를 보여주고 시청자 교육을 한다"며 "한국에서도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진화하는 제품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유해성 검증부터 해야"…담배 사업법 개정안, 논의 진척 없어

정부도 이런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발표된 '담배 규제' 대책에도 관련 내용이 담겼습니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금연종합대책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전용기기에도 경고 그림 부착 의무화 ▲(멘톨·과일 등) 가향물질 첨가 단계적 금지를 발표했습니다.

또, 2021년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HP2030)에서는 ▲신종담배 시장 진입 차단을 위한 담배의 '정의' 확대 ▲담배 제품 사용 감소를 위한 가향물질 첨가 금지를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 개정안이 논의됐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담배의 범위에 '합성 니코틴'을 포함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 등 모두 4건이 기획재정위원회에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회의록을 모두 살펴봤습니다.

우선 이 법안들을 심사한 수석전문위원은 2020년 11월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원회에 참석해 "니코틴을 함유한 유사담배를 현행법상 담배에 포함 시켜 니코틴 중독 문제 등 안전성 관리가 필요하다"면서도 "합성니코틴 등을 담배로 인정할 경우 외국에서는 담배로 인정받지 않아 품질 검증이 되지 않은 물질도 담배로 유통 가능해 소비자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규정한 해외 사례도 없었던 탓에 논의는 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후 2023년 11월 경제재정소위원회에 다시 이 문제가 논의됐습니다. 당시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현재 ‘연초의 잎을 원료로 하는 전부 또는 일부’라고 돼 있는 것을 연초 전체로 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의견"이라면서도 "합성니코틴까지 포함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독성에 대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아직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습니다.

"WHO나 미국에서 규제하고 있다면 국민의 건강권 측면에서도 우리가 확장할 필요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든다" (A 의원)

"앞으로 담배의 다양한 모델이 어떤 형태로 진화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쪽으로 유해하다는 전제를 깔고 이렇게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맞지 않다" (B 의원)

제21대 국회 제410회 제2차 기획재정위원회 – 경제재정소위원회 (2023년 11월 21일)

당시 의원들의 판단도 엇갈렸고, 올해 2월 열린 소위원회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합성 니코틴에 대한 유해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연구 결과를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다만, 21대 국회 임기가 이달 말까지인 만큼 다음 국회에서 새로 법안을 발의해 논의할 것 보입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이런 논의에 대해 "합성 니코틴이든 담배 잎에서 가져온 니코틴이든 화학 구조는 같은 물질"이라면서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우선 사용을 막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센터장은 "확신할 수 없고 건강에 어떤 위험을 만들어 낼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있는 물건을 국민에게 계속 풀고 있다고 하는 건 보건학에서 말하는 '사전 예방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면서 "일단은 사용을 중지시키고 그 이후에 연구를 통해서 안정성이 확보되면 쓰도록 하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담배 성분 공개 등 현안에 집중하느라 합성 니코틴과 가향물질 첨가에 대해서는 집중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서 "22대 국회가 개원하는 대로 입법 노력을 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 담뱃잎→줄기·뿌리→합성으로…"규제하면 또 다른 비규제 찾을 것"

일단 액상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업주들도 합성 니코틴 규제에 대해선 찬성하는 분위기입니다.

김도환 전자담배협회 총연합회 부회장은 취재진과 만나 "이미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일어나고 있고, 지금 막지 않으면 나중에는 오히려 막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면서 "하루라도 빨리 규제를 받는 것이 시장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김 부회장은 "이렇게 합성 니코틴이 시중에 널리 판매되고 있는 배경에는 '천연 니코틴'에 대한 세금 문제가 있다"면서 "합성 니코틴에 세금이 부과되면 또 다른 니코틴을 찾아 담배를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부회장에 따르면 업계는 '담배의 잎'에서 추출한 천연 니코틴에 세금이 붙자 '담배의 줄기와 뿌리'를 이용한 천연 니코틴으로 액상 전자담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줄기와 뿌리 등에도 세금이 부과되기 시작하자 '합성 니코틴' 시장으로 옮겨갔습니다.

현행법은 궐련, 파이프 담배, 전자 담배, 씹는 담배 등에 대해 '개별 소비세'를 부과하는데, 담배의 수량이나 니코틴 용량 등을 과세표준으로 하는 '종량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국내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세율은 1ml 당 1,799원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김 부회장은 "보통 30ml 액상을 10일 정도 사용하는데 그럴 경우 세금만 53,970원"이라면서 "일반 담배가 1보루(10개)에 45,000원에 팔리는 점을 고려하면 경쟁력이 떨어져 세금을 피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법안 논의 과정에서 '세율'도 함께 조정되지 않으면, 또 다른 비규제 니코틴을 이용한 제품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시장에선 새로운 종류의 담배가 계속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무연 담배의 일종인 니코틴 파우치, 전자식 물담배 등이 대표적인데요. 22대 국회에서는 규제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속도감 있는 논의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연관 기사] 담배 아니다? 법 개정은 ‘하세월’…금연정책까지 ‘흔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67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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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민 기자 (young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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