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부터 전영현까지…삼성 반도체 수장 교체는 ‘경영 쇄신’ 카드였다 [비즈360]
“1위 안주하다 무너져” 위기감 드러내
김기남-경계현, 세대교체로 경영 쇄신
새 수장 전영현 부회장 “행동파 리더”
HBM 납품·파운드리 고객사 확대가 과제
[헤럴드경제=김현일·김민지 기자] 삼성전자는 21일 반도체 부문 수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미래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내세웠다. 반도체 사업을 둘러싼 위기감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례적인 ‘원 포인트’ 깜짝 인사로 대대적인 분위기 쇄신을 예고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과거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중요한 국면마다 반도체 수장 교체로 경영 쇄신을 도모해왔다. 그만큼 파장도 컸다. 조직 전반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파격적인 후속 인사까지 낳으며 삼성은 물론 재계 전반에 걸쳐 리더십 교체 바람을 몰고 왔다.
지난 2017년 10월 당시 권오현 부회장의 전격적인 ‘용퇴’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권 부회장은 사의를 표명하며 6년 만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겸직하고 있던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에서도 물러나며 완전한 ‘경영 쇄신’을 주문했다.
당시 반도체 부문이 매 분기 역대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권 부회장의 결단은 재계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권 부회장은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이라며 세간의 호평에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는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열린 삼성전자 창립 48주년 기념식에서도 재차 위기감을 드러냈다. 권 부회장은 “과거 수많은 1위 기업들이 현실에 안주하며 한 순간에 무너졌다”며 “우리도 사업 재편, 경영 시스템 변화 등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권 부회장의 용퇴는 곧이어 고강도 인사 태풍을 몰고 왔다. 윤부근 CE부문장·신종균 IM부문장까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보름 만에 대표이사 사장단이 모두 새 얼굴로 채워진 것이다.
삼성전자는 당시 “조직을 쇄신해 활력을 주는 동시에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해당 인사의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삼성전자는 권 부회장의 후임으로 김기남 당시 반도체 총괄사장을 택했다. 김기남 사장은 1959년생으로 당시 58세였다. 1952년생이었던 권 부회장보다 7년 젊은 만큼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인물로 주목을 받았다. 김 사장은 DS부문장이 된 지 약 1년 만인 이듬해 12월 사장단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DS부문을 전면에서 이끌었다.
삼성전자는 2021년 12월 다시 DS부문장 교체를 단행한다. 김기남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DS부문장에서 물러나고 경계현 삼성전기 사장이 새로운 반도체 부문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반도체는 물론 가전, 모바일 등 3개 사업 부문 수장을 모두 교체했다
당시 사장단 인사 발표를 13일 앞두고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귀국길에서 “시장의 냉혹한 현실에 마음이 무겁다”고 언급해 당시 인사가 이 회장의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됐다.
1963년생인 경 사장은 전임 김기남(1958년생) 회장에 비해 5년 젊어 경영 쇄신을 위한 세대교체성 인사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이번 반도체 수장 교체에도 삼성전자 전반을 둘러싼 쇄신 필요성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침체된 반도체 조직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추진력을 갖추면서도 연륜있는 반도체 분야 베테랑을 세워 초격차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전영현 부회장은 도전적인 ‘행동파’ 리더로 평가받는다. 확실하고 화통한 성격과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책임감이 뛰어난 리더라는 후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LG에서 경력으로 입사해 삼성전자 CEO까지 올라간 것에서 알 수 있듯 실력으로 보여주는 리더”라며 “빈도체 업계에서 잔뼈도 굵고 삼성의 연륜있는 리더 중 하나인 만큼 사업을 추진력 있게 끌고 나갈 수 있는 적임자라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전 부회장은 지난해 8월 한국공학한림원 유튜브 콘텐츠에 등장해 자신을 ‘열정남’으로 소개하며 “눈에 보이는 가능한 성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 실패를 할 수 있더라도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라는 것이 내 좌우명”이라고 말했다.
또한, “세계 1등이 되면 따라가거나 벤치마킹할 곳이 없다”며 “그런데도 불가능해 보이거나 굉장히 어려운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화시키면 세계 1등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2등이 금방 쫓아올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부터 6~7개월간 미래사업기획단장을 역임한 것도 반도체 조직을 혁신할 적임자로 뽑히는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전 부회장은 현재 삼성 사장단 중에서는 가장 새로운 안목을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며 “지난해 정기 연말인사에서 미래사업기획단장을 맡은 후 최근까지 현업을 완전히 떠나 삼성이 하고 있지 않던, 새로운 사업 분야만 계속 연구해 삼성이 어떻게 하면 빠르게 도약할 수 있을지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시각에서 혁신과 도전을 펼치는 그의 리더십이 DS 부문 활용될 거란 것이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전영현 부회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크게 HBM(고대역폭메모리)과 파운드리다. 전 부회장은 메모리 중에서도 D램 설계에 특화된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현재 삼성이 직면한 HBM 납품 이슈를 해결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현재 자사 HBM3E를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위해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한발 밀리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와 협력하며 HBM3를 독점 공급하고 HBM3E 납품을 시작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테스트 수준에 그쳤다. 올해 12단 제품을 내세워 엔비디아 납품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과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엔비디아를 포함한 HBM 고객사 확대가 시급하다.
급변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TSMC-엔비디아’로 이어지는 동맹에 대항할만한 우군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SK하이닉스는 TSMC의 로직 다이 기술을 활용해 HBM4 제품을 개발하고, TSMC는 SK하이닉스의 HBM과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패키징해 양산한다.
삼성전자는 인텔, 구글, MS, 네이버 등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협력하며 판을 뒤집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자체 AI 가속기인 ‘마하-1’을 연내 개발해 내년 양산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TSMC와의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파운드리에서는 초격차 기술 확보가 관건이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삼성전자와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격차는 50%포인트에 달한다. TSMC 보다 적은 대형 고객사 개수, 미흡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최근 인텔까지 참전하며 3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 2세대 수율 개선, 2나노 공정 양산 등 과제가 산적해있다.
한편, 경계현 사장의 사임으로 삼성전자는 올해 한종희 DX부문장 부회장 1인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된다. 삼성은 내년 정기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통해 전영현 부회장의 사내이사 및 대표이사 선임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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