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리포트] "이자는 커녕 월세도 못 낼 판"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 1조 훌쩍

박슬기 기자 2024. 5. 22. 06:2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리 인하 멀어지는데 불어나는 부실①] 고금리 장기화·지갑 닫는 소비자에 자영업자들 줄줄이 '폐업'
[편집자주]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이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3.50%의 기준금리가 이어지면서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대출자들이 늘고 있다. 고물가, 고환율로 차주들의 상환능력도 악화하면서 금융권의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은행에서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대출 연체 규모가 1조원대에 진입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가게에 임대 현수막이 걸려있다./사진=뉴스1
"차라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가 더 나아요. 사람들이 요즘 돈을 안쓰다 보니 월 매출이 1년 새 절반도 아니고 4분의 1로 폭삭 주저앉았어요."

경기도 고양시에서 치킨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40대 김 모 씨는 이같이 토로했다. 10여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매출 등 가게 사정이 이같이 악화한 것은 이번인 처음이다. 그는 "고물가에 사람들의 소비심리가 위축된 게 확연히 느껴진다"며 "높은 식자재 가격에 월세, 대출이자 등은 계속 느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150만여명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하루에도 수십건씩 폐업 관련 문의 글이 올라온다. 고금리·고물가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자영업 경기가 최악의 침체 수준을 보이는 가운데 금융권의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은행에서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대출 연체 규모가 1조원 선을 넘어섰다.


불어난 부실에 부실채권 상매각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1개월 이상 연체한 개인사업자 대출잔액은 지난 3월 말 기준 1조3559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3월 말(9876억원)과 비교해 1년 새 37.3%(3683억원) 급증했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총액은 314조6854억 원에서 322조3689억원으로 2.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5대 은행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 평균은 지난해 3월 말 0.31%에서 올 3월 말 0.42%로 0.11%포인트 올랐다.

주목할 점은 5대 은행 모두 연체 규모가 상승했다는 점이다. 특히 NH농협은행의 개인사업자 연체액이 가장 컸다. NH농협은행의 개인사업자 연체액은 지난해 3월 말 1930억원에서 3460억원으로 79.3% 급증했다. 따라서 연체율도 0.36%에서 0.63%로 대폭 올랐다.

같은 기간 KB국민은행의 경우 연체액이 1734억원에서 2636억원으로 52% 늘면서 연체율은 0.20%에서 0.29%로 뛰어올랐다.

하나은행도 연체액이 2410억원에서 2770억원으로, 연체율이 0.41%에서 0.47%로 늘며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신한은행은 연체가 2150억원에서 2660억원으로 23.7% 증가했으며 연체율이 0.33%에서 0.40%로 상승했다. 우리은행은 1650억원에서 2030억원으로 22.7% 증가했으며 연체율은 0.32%에서 0.4%로 높아졌다.

이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며 자영업자 대출이 급증한 후 최근 대출 만기가 잇따라 도래하면서 상환능력이 부족한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연체가 쌓인 결과로 분석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들어 외식 비용이 크게 늘고 고물가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어 자영업자들의 상환 능력이 전반적으로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 시기 자영업자 대출 규모가 크게 불어난 부분도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실 채권의 상매각 등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있는 데도 연체율이 계속 오르고 있다"며 "부동산, 음식점 등 경기에 민감한 업종을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은 부실채권을 대거 상각 또는 매각하면서 건전성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올 1분기 5대 은행은 1조6079억원 상당의 부실 채권을 상·매각했다. 지난해 1분기(8536억원)와 비교해 88.4% 늘어난 규모다. 2022년 1분기(4180억원)와 비교하면 2년 만에 약 4배 증가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5대 은행의 고정이하여신(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비율은 평균 0.28%로, 지난해 1분기 말(0.27%)보다 올랐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자영업자 지원도 '옥석 가리기'해야"


문제는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밀릴 수록 고금리가 지속돼 개인사업자의 연체 규모는 더 불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오는 23일 예정된 상반기 마지막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에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현행 3.50%로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11차례 연속 동결이다.

증권가에선 당초 7~8월로 예상했던 한은의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을 4분기(10~11월)로 옮기고 연내 2번으로 예상했던 금리 인하 횟수를 1번으로 줄이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부채 질도 악화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신용평가기관 나이스(NICE)평가정보에서 받은 '개인사업자 가계·사업자 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335만9590명의 개인사업자(자영업자)가 총 1112조7400억원의 금융기관 대출(가계대출+사업자 대출)을 보유했다.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 개인사업자는 172만7351명으로 전체 개인사업 대출자(335만 9590명) 가운데 절반 이상(51.4%)을 차지했다. 이들의 대출잔액은 689조7200억원, 연체액은 24조7500억 원으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62%, 79%에 이르렀다. 이는 추가 대출이나 돌려막기조차 사실상 불가능한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사업성이 있는 자영업자를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옥석가리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원을 받아 재기할 수 있는 우량 차주와 버틸수록 적자가 쌓이는 비우량 차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며 "재기 불가능한 이들에겐 폐업비용을 지원하는 등으로 구조조정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박슬기 기자 seul6@mt.co.kr

Copyright © 머니S & money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