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지원 하랬더니 서류 조작하고 의사에게 빌려주고… 30조 규모 ‘금중대’ 관리 ‘비상’

최온정 기자 2024. 5.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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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올해 금중대 규모 9조원 확대… 총 30조원
7년간 부정대출 2137억원… 대기업 대출 사례도
허술한 규정 탓에 병·의원도 지원… 감사원 지적
한은 “사전 검수 강화… 위법 적발 시 수사의뢰”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금융중개지원대출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규정을 위반해 대출을 받은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행은 사전 검사를 강화해 대응하고 있지만, 사업 규모가 크게 확대되면서 부적격 대출 사례가 더 나올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이란 한은이 시중은행에 저리로 돈을 빌려주고, 이를 중소기업 대출에 활용하도록 한 제도다. 개별 은행이 먼저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면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은행에 자금을 내주는 사후대출 방식으로 작동된다. 한은은 현재 총 30조원의 금중대를 운영하고 있다.

◇ 사업자등록증 변조해 금중대 신청 적발

22일 한은에 따르면 최근 A은행 경기지역그룹의 한 직원이 한은 경기본부에 금중대를 신청하면서 문서를 조작해 제출했다가 적발됐다. 지원 대상이 아닌 임대업종에 대출을 내어주려고 사업자등록증에 명시된 업종을 변조한 것인데 한은 검수 과정에 발각됐다.

은행 대출 창구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뉴스1

한은 관계자는 “개별 금융기관이 대출 실적을 취합해 한은 지역본부에 전달하면 각 본부에서 심사를 거쳐 돈을 지급하는데, 문제가 된 대출을 심사한 경기본부에서 돈을 빌린 업체의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에 제출된 서류가 변조된 것을 확인했다”면서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대출을 취급하면서 실적 압박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해당 사건이 발생한 이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중은행들이 내부 관리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대출 취급 시 유의사항을 사내 게시판에 공유하거나, 기업 대출 담당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금중대 부정 대출 사례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1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었던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이 작년 10월 국감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작년 상반기까지 7년간 한국은행 대출 규정을 위반하고 대기업과 과다채무기업에 부당하게 지급된 금액은 2137억원을 넘겼다.

대출 규정 미비로 병원 개원의에게 자금이 지원된 일도 있었다. 감사원이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금중대 프로그램 중 하나인 신기술창업기업지원 사업에 선정돼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일반의원과 치과의원이 3년 내내 가장 많은 대출을 받아간 기업 1,2위를 차지했다. 한은은 이런 사실이 적발된 후 뒤늦게 병·의원 및 서비스업이 지원대상이 되지 않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신기술창업기업지원은 우수한 기술을 갖춘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3년 도입된 프로그램이다. 한은은 기술신용평가(TCB)에서 일정 수준을 넘는 등급을 받은 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을 지원했는데, 전문자격증을 보유한 병·의원도 TCB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 의사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인 셈이다.

◇ 中企 대출수요 증가세… “금중대 관리 강화해야”

부정대출은 전체 금중대 지원규모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김 전 의원 자료에 따르면 전체 대출액 중 부정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0.3% 안팎이다. 그러나 금액으로 환산하면 수백억원 규모다.

특히 최근 한은이 고금리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금중대를 늘리면서 부정대출 절대규모가 증가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은은 올해 초 금중대 한도를 한시적으로 21조원에서 30조원으로 확대해 지방중소기업 지원에 사용하기로 한 바 있다.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 / 한국은행 제공

늘어나는 금중대 대출 수요도 부정대출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한은이 지난 13일 발표한 ‘2024년 4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5조4000억원 늘었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을 금중대가 차지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금중대 실행건수가 늘면서 14년 7개월 만에 중소기업 대출금리(4.98%, 신규취급액 기준)가 대기업 대출금리(5.11%)보다 낮아지기도 했다.

한은은 금중대가 제도 취지에 맞게 활용되도록 검사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최근 시스템을 개선해 지역본부에서 취급하는 금중대도 전산상으로 관련 자료를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본부의 시스템만 전산화가 돼 있어 지역본부에서 취급하는 금중대는 직원들이 자료를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위규 대출을 시행한 은행에 대해서도 처벌 규정을 강화하기로 했다. A은행 부정대출 사례처럼 대출 시행 전에 위규 사례가 적발된 경우 처벌규정이 명확하지 않았는데 이 부분을 보완하기로 한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위법 사항이 적발될 경우 수사의뢰를 하는 방향으로 제재를 강화할 방침”이라면서 “올해 안에 내부 규정을 바꿀 계획”이라고 했다.

김진일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금중대 사업 한도가 늘어나면 부실 대출 규모도 확대될 수 있다”면서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정책의 혜택이 집중될 수 있도록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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