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 말벌의 '전기장' 느끼는 애벌레

이병구 기자 2024. 5.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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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와 피식자가 서로의 존재를 감지하고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은 자연에서 가장 강력한 진화 경쟁의 결과다.

샘 잉글랜드 영국 브리스톨대 생명과학부 연구원팀은 애벌레가 말벌이 날갯짓하며 만든 전기장을 감지해 포식자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연구결과를 20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공개했다.

나아가 연구팀은 주사전자현미경(SEM)을 활용해 애벌레에 전기장을 감지할 수 있는 기관이 있는지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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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성 말벌은 애벌레 등 다른 곤충, 동물을 잡아먹는다. 게티이미지뱅크

포식자와 피식자가 서로의 존재를 감지하고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은 자연에서 가장 강력한 진화 경쟁의 결과다. 잡아먹으려는 자와 먹히지 않으려는 자의 대결에서는 시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이 총동원된다. 영국 연구팀이 애벌레가 포식자의 전기적 힘을 감지해서 포식자의 존재를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샘 잉글랜드 영국 브리스톨대 생명과학부 연구원팀은 애벌레가 말벌이 날갯짓하며 만든 전기장을 감지해 포식자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연구결과를 20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공개했다.

전하를 띤 물체는 전하를 띤 다른 물체에 힘을 가하는 전기장을 형성한다. 자연에 있는 동물과 식물도 거의 항상 전하를 띠고 있다. 특히 동물은 걷거나 날갯짓하는 등 이동하면서 몸에 정전기가 축적된다. 생물이 띠는 전기장이 생태에 미치는 영향은 그동안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전기가 포식자-피식자의 상호작용에서 정보로 활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말벌과 같은 포식성 비행 곤충이 몸에 정전기를 축적한다는 사실이 선행 연구에서 밝혀졌기 때문에 피식자에게는 말벌이 일으킨 전기장 변화가 말벌을 감지할 단서가 될 수 있다.

연구팀은 나비목 곤충 3종인 진홍나방(학명 Tyria jacobaeae), 지옥독나방(학명 Telochurus recens), 유럽공작나비(Aglais io) 애벌레와 이들을 잡아먹는 포식성 말벌(학명 Vespula vulgaris)을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몸을 감아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진홍나방 애벌레(A)와 지옥독나방 애벌레(B). 방어적인 몸짓인 '플레일링'을 하는 중인 유럽공작나비 애벌레(C). 세 애벌레의 포식자인 말벌(D). PNAS 제공

먼저 말벌과 애벌레 사이에 발생하는 전기장의 세기를 정확히 파악했다. 말벌 둥지 입구에 정전기 센서를 설치해 말벌의 평균 전하량을 측정하고 이를 애벌레의 평균 전하량과 비교해 말벌이 애벌레 주변에 갈 때 발생하는 전기장을 계산했다.

연구팀은 애벌레를 부드러운 집게로 20초 동안 잡아 방어 행동을 유도했다. 이후 수 센티미터(cm) 거리에서 전극을 통해 말벌 모사 전기장을 발생시키며 애벌레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전기장은 말벌의 날갯짓 주기와 비슷한 주파수인 180헤르츠(Hz)로 진동시켰다.

진홍나방과 지옥독나방 애벌레는 위협을 느끼면 몸을 둥글게 마는 방어 행동인 '코일링(coiling)'을 한다. 위협이 사라졌다고 판단되면 다시 몸을 펴서 걷는다. 두 애벌레는 말벌 모사 전기장이 있을 때 말린 몸을 다시 풀고 걷기 시작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전기장을 위협으로 인식한 것이다.

유럽공작나비 애벌레는 방어 행동으로 몸을 둥글게 마는 대신 몸을 휘두르는 '플레일링(flailing)'이나 깨무는 행동을 한다. 이 애벌레도 말벌 모사 전기장이 있을 때 플레일링을 지속한 시간이 더 길었다. 또 전기장이 켜져 있을 때만 전극을 깨무는 모습이 관찰됐다.

식물 줄기에 있는 애벌레와 말벌 사이의 전기장 세기를 계산해 표현한 그림. PNAS 제공

나아가 연구팀은 주사전자현미경(SEM)을 활용해 애벌레에 전기장을 감지할 수 있는 기관이 있는지 조사했다. 애벌레 몸에 난 털인 강모(setae)들이 후보군으로 선정됐다. 일부 강모는 곤충의 날갯짓과 비슷한 주파수 범위에서 전기장에 공명을 일으키며 강하게 반응했다. 연구팀은 "강모가 전기적으로 민감하고 포식자의 날갯짓 주파수에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애벌레에게서 전기 자극 수용이 확인된 것은 다른 많은 육상 동물들도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전기가 생태학적으로 중요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포식자와 먹이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더 많은 탐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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