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래서 정든 軍을 떠났다" K-상사 이야기

강원 원주=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2024. 5. 22.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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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있는데 사람이 없다…軍 떠나는 '3040'③]
편집자 주
우리나라의 군사력 순위가 세계 5위로 평가되고 K-방산은 세계 4대 강국 도약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사람이 없다면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단지 초저출생에 따른 병력 부족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군은 미래 변화에 맞춰 이미 과학기술군 전환에 나섰고 여기에는 숙련된 베테랑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소령‧대위‧상사 같은 30‧40대 중견간부들의 조기전역 추세가 예사롭지 않다. 그렇다 보니 핵심 장비를 운용할 인력이 부족해 훈련을 제대로 못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불편한 현실은 수년째 지속돼왔지만 병사나 초급간부 처우 개선 등에 묻혀 외면 당했다. 중견간부는 일종의 '낀 세대'로서 군의 변화에 따른 부담과 책무를 짊어져왔다. 이들이 정년은 물론 연금까지 포기하고 군문을 나서는 이유는 실망과 회의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군 수뇌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단기적 미봉책으론 부족하고 특단의 방책이 필요할 수도 있다. 군의 핵심 전력이자 허리 격인 중견간부들의 현실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김형래(35) 예비역 육군 상사. 홍제표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훈련 때 사람 없어 옆 부대서 '품앗이'…조기전역 급증
② 부사관은 더 심각…"봉급도 연금도 희망 안 보여"
③ "나는 이래서 정든 군을 떠났다" K-상사 이야기
(끝)

강원도 소재 기계화보병사단에서 13년 간 복무했던 김형래(35) 예비역 육군 상사는 지난달 '희망전역' 했다. 계급 정년(53세)이나 군인연금 수령 연한(20년)이 되기 전에 스스로 군을 떠난 것이다.

그는 병사로 입대한 뒤 부사관으로 선발된 '현역 부사관' 출신이다. 부사관 임관 후 4년 의무복무를 마친 뒤 군이 적성에 맞고 장래성도 밝다고 보고 장기복무로 전환했다.

최소 군단급 부대의 주임원사가 되겠다는 포부도 품게 됐다. 입대 전 고졸 학력이었지만 전문대와 사이버대학 졸업을 거쳐 모 대학 석사 과정까지 밟고있다. 미래를 위한 스펙 관리였다. 그 결과 부소대장과 대대 인사담당관으로 중용되며 꿈에 한 발짝씩 다가섰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군 생활에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됐다. 박봉의 급여나 열악한 복지는 어느 정도 각오한 바였지만 '낀 세대' 격인 중견간부로서의 상대적 박탈감은 어쩔 수 없었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나아진다는 희망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만기전역한 선배들의 현실은 대체로 실망스러웠다. 옛 상관에게 어렵게 전역 의향을 밝혔더니 돌아온 대답은 "나도 이미 전역했다"였다.

그는 군대가 군대답지 않아졌다는 비판도 덧붙였다. 병사 안전과 사고 예방에만 너무 치우친 나머지 '무사안일' 풍조가 만연해 훈련다운 훈련을 안 한지도 오래됐다는 것이다. 주관적 시각이나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전현직 군 간부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 어째서 군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됐나.

여러 실망스러운 일을 겪으며 '이게 군대가 맞나' 하고 마음이 떠났고, 부실급식 문제가 터졌을 때 마음이 또 한 번 떠났고, 병장 월급 200만원 얘기 나올 때도 군대에서 (우리들의) 사기를 아예 관리를 안 해준다고 느꼈다.

<편집자주> 부실급식 문제는 2021년 감사원이 일부 부대 영외거주 간부들이 영내식당을 무료로 이용(무전취식)함에 따라 병사 급식의 질이 떨어졌다고 결론 내리면서 논란이 됐다.

△ 국방부는 병사 급여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하사 급여도 결코 적지 않다고 한다.

기자님은 만약 인턴이나 수습이 비슷한 돈을 받는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기자님이 일하는 능력이 훨씬 좋을 텐데도 말이다. 그리고 병사 월급은 세금도 안 떼고 다 나온다. (반면) 하사는 세금 떼고 (식대가 유료여서) 한 달에 밥만 먹어도 30만원 그냥 나간다.

△ 상대적 박탈감은 중견간부들의 공통된 정서인가.

전역한 용사(병사)들이 가끔 연락 온다. 전역해서 알바(아르바이트) 하는 애들이 250~300(만원) 받는다고 한다. (사회로) 나가서 알바해도 이 정도 번다고 하니까 장기(복무) 지원을 할 이유가 없고 (의욕이 떨어지게 된다)

△ 전역하겠다고 하니까 군에서 어떻게 반응했나.

상황을 뻔히 아니까 말리지 못한다. 주임원사부터 시작해 제 첫 부서장께 연락을 했다. 10년 고참인데. "저 전역합니다" 했더니 "나도 전역할게" 하고 나서 딱 20년 채우고 전역하셨다. 그리고 제 병사 때 부서장님도 "저 전역합니다" 했더니 "나 이미 전역했어"라고 하더라.

△ 그래도 '주임원사'라는 꿈이 있었는데 아쉽지 않았나.

하사 때는 그런 로망이 좀 있었는데 이제 사단 주임원사님, 군단 주임원사님들이 전역하고 어떻게 사는지 안다. 원사가 7급 공무원 정도 되는데, 주임원사 하셨던 분들 중에 공사장에서 신호수 하시는 분들이 있고 아파트 경비하시는 분들도 많다. 그 분들 중에는 군사학 박사 학위 가진 분도 계시다.

황진환 기자

 
△ 군에서 실망스러웠던 일은 또 어떤 게 있나.

군인다운 업무를 안 한지 꽤 오래됐다. 행정 업무, 잡무가 많다. 최소한 교육훈련을 해야 하는데 한 달을 놓고 보면 하루이틀 하면 다행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인권 이런 게 강조되고 복지 늘리는 건 좋은데 너무 과해서 훈련을 나가도 사고 방지를 우선적으로 한다. 단 한 번도 포 사격을 안 하고 전역한 용사가 있을 때도 있었다.

△ 현 정부 들어서는 훈련이 정상화되고 강도도 훨씬 세지지 않았나.

훈련을 하기는 한다. 근데 이제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가 일단 사람이 없다. 저희 사단은 기계화부대니까 전차와 장갑차가 있는데 보직률이 60%, 70%도 안 되는 부대가 있다. 전차 10대 중 3대, 4대가 못 움직이는 것이다.

△ 그럼 어떻게 하나.

다른 중대 간부들이 와서 사격을 같이 하고, 그러면 다음 중대에서 사격할 때는 그 간부들이 역할만 바꾸는 거다. 내가 포수인데 다른 중대 훈련할 때는 가서 조종수 임무 해주는 식이다. 보병은 하차전투(보병 산개)를 해야 하는데 하차전투를 포기하고 탑승해서 포를 쏘거나 보병 간부가 조종까지도 하고 그렇다.

△ 군의 핵심인 중견간부들의 조기 전역은 이제 어떻게든 막아야 할 것 같다. 병사 급여를 다시 낮출 수도 없고, 개선 방안을 생각해 본 게 있나.

그냥 제 개인적 생각이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있지 않느냐. 결국은 돈이다. 증세하는 것이 국민적 반발이 심할 것 같으면 방위세 같은 목적세라도 걷어서라도 재원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 안보가 무너지면 다른 것은 다 소용없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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