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시켰냐고요? 억울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말하는 위험한 미래 [지구, 뭐래?]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어린 애가 뭘 알고 했겠어? 부모가 시켰겠지’와 같은 댓글이 있었습니다. 저는 억울했습니다.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저의 진지한 생각이 무시 당하는 듯 했습니다”
21일 오후 6시께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기후위기 헌법소원의 두 번째 공개변론에서 서울 흑석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 학생이 발언권을 얻었다. 짧게는 이날 열린 헌법소원 공개변론 재판이 시작된 오후 2시부터, 길게 보면 헌법소원을 청구했던 2022년 6월 13일부터 기다린 끝에 얻은 기회였다.
국내 최초 기후소송에서 초등학생 청구인이 최후진술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때부터 한제아 학생은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약 2년 전 태아를 포함한 영·유아 62명 청구인단 중 한 명으로 기후소송을 제기했을 때부터 이어져 왔던 관심이다.
관심에는 ‘어린 아이들이 기후소송에 대해 뭘 아느냐’는 의심과 ‘부모가 시켰을 것’이라는 억측이 섞여 있었다. 그간의 의심과 억측에 한제아 학생은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다”며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이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유일한 행동”이라고 답했다.
멸종위기 동물들, 줄어드는 봄과 가을을 보며 한제아 학생은 미래가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언덕 위의 집 1층까지 물에 잠기는 걸 지켜봐야 했고, 산사태가 날까 밤잠을 설쳤다.
할 수 있는 만큼의 기후위기 대응을 실천했다. 한제아 학생은 좋아하던 인형이 재활용되지 않는 쓰레기라는 걸 알고 나서는 사지 않았다고 했다. 쓰레기산 위에 도토리나무를 심었고 자원처리시설을 견학했다. 그럼에도 음식을 남기거나 물건을 살 때,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갈 때엔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한제아 학생이 보기에 어른들은 기후위기 해결 책임을 회피하고, 미래에 떠넘기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기후위기를 저지하려면 전 지구의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오르지 않아야 하는데, 기온 상승을 저지할 만큼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한제아 학생이 어른이 될 2031년부터는 해마다 온실가스를 얼만큼 줄일지 구체적인 법 등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담은 탄소중립기본법과 동법 시행령, 기본계획(옛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는 2030년까지의 계획만 명시돼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정점을 이뤘던 2018년보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줄이겠다는 목표다.
비슷한 생각의 청소년과 시민, 아기들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가 미흡해 생명권과 재산권, 평등권 등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2020년 3월 청소년 19명이 제기한 ‘청소년기후소송’과 시민기후소송(2021년), 아기기후소송(2022년)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2023년) 등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네 사건들을 병합해 심리하고 있다. 이례적으로 두 차례 공개변론을 열었고 일반 시민인 청구인들에게 진술할 기회를 줬다.
한제아 학생은 최후진술에서 “이 소송은 2030년, 그리고 2050년까지의 미래를 정하는 중요한 결정”이라며 “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우리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우리는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청소년 청구인에서 이제는 어른이 된 김서경 활동가도 이날 최후진술을 했다. 2020년 헌법소원을 청구하고 이날 헌법재판소에서 입을 떼기까지 4년 간 김서경 활동가는 기대와 좌절을 반복해야 했다.
그 사이 국회는 기후위기비상선언을 채택했고, 헌법소원을 청구했던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대체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꾸려졌고, 김서경 활동가도 여기 참여할 기회도 얻었다.
김서경 활동가는 “청소년은 장식이었다”며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여 만들었다는 명분을 위해 (청소년이) 필요했을 뿐 실제 얼마나 석탄 투자를 줄이고 온실가스를 감축할지 논의해서는 안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와 정책결정자들에게 기후대응을 요구했던 이유는 (기후위기가)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재난의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이라며 “헌법소원은 우리가 던지는 마지막 믿음이다. 우리의 자리를 내어준 이 판단을 마지막으로 믿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2021년 시민기후소송 청구인인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장도 최후진술을 통해 “이 정도의 법과 감축목표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고, 국민들의 안전한 삶을 지킬 수 없다고 외쳤지만 행정부도 입법부도,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했다”며 “기후위기 시대 국가의 우선적인 책무가, 시민의 삶과 기본권을 지키는 것임을 헌법재판소가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3일과 21일 두 차례에 걸쳐 공개변론은 마무리됐다. 헌법재판소는 청구인들과 정부 측의 의견을 종합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의 위헌성에 대해 결정 내릴 예정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르면 9월께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관련 기사: “독일은 위헌, 우리는?”…기후소송 마지막 공개변론 ‘옥신각신’)
(관련 기사: “온실가스도 저희가 다 줄이나요?” 국내 첫 기후소송 공개변론…미래 세대 평등권은? [지구, 뭐래?])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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