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떨게 하는 영업 비밀 유출… 로펌들, 지식재산 수호천사로

허욱 기자 2024. 5. 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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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산업기술 해외 유출 적발 건수 23건
정보·수사 당국이 5년간 96건 적발하며
사전에 피해를 막은 규모만 23조로 추산

국내 굴지의 반도체 회사에서 20여 년간 반도체 설계를 연구한 A씨는 2022년 7월 퇴직하자마자 경쟁사에서 임원으로 와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퇴직 당시 작성한 ‘2년간 경쟁사로 취업해선 안 된다’는 전직 금지 약정서와 비밀 유지 서약서도 소용없었다. 그는 퇴직 1년도 되지 않아 경쟁사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는 뒤늦게 이 직원의 이직을 막아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내 이겼지만, 이미 핵심 기술들은 경쟁사로 흘러간 뒤였다.

작년에는 자문 중개 업체를 통해 회사 핵심 기술을 빼돌린 2차 전지 제조사의 한 임원 B씨가 구속 기소됐다. 자문 형식으로 회사 기밀을 경쟁사에 알려주고 자문료를 받아 챙기는 새로운 수법이었다. 같은 해 국내 반도체 공장 설계도를 중국으로 빼돌려 공장을 세우려다 적발된 한 대기업 전직 임원 C씨도 구속 기소됐다. 그는 국내 반도체 제조 분야 최고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국내외 기업들 간의 기술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업의 영업 비밀 유출 사건도 증가하고 있다. 산업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다가 적발된 건수는 2019년 14건에서 지난해 23건으로 대폭 늘었다. 정보·수사 당국이 최근 5년간 총 96건의 산업 기술 해외 유출 사건을 적발하면서 피해를 사전에 막은 규모만 23조원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기업들의 기술 유출 피해 증가에 따라 영업 비밀 침해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였고, 사법부도 이 같은 범죄군에 대한 권고 형량을 상향하는 등 규제 강화에 나섰다. 유출된 기술의 중요도에 따라 최대 징역 18년까지 선고하도록 했고, 전과가 없어도 실형 선고가 가능하도록 기준을 높였다.

그래픽=백형선

기업에 있어 영업 비밀은 핵심 경쟁력이고, 이 비밀의 유출은 곧 경쟁력 약화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영업 비밀 침해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다. 기업 내부 통제는 물론 협력 업체·계약 상대방과의 비밀 유지 계약, 퇴직자 관리 등 기업들의 법률 자문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주요 로펌들도 법률·산업·기술 전 분야 전문가를 총동원해 기업들의 자문 요청에 대응하고 있다. 영업 비밀 유출 관련 분쟁뿐만 아니라, 디지털 포렌식 조사 업무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2009년 국내 로펌 중 영업 비밀 사건 전담 팀을 가장 먼저 꾸린 김앤장. 국내 최대 규모인 180여 명 규모로 영업비밀·기업정보보호그룹을 운영 중이다. 김앤장은 기업의 영업 비밀 관련 법률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 분야에 정통한 변호사와 변리사 등 전문가들로 자문하고 있다.

광장은 반도체와 2차 전지, 화학, 바이오, 항공, 기계, 자동차 등 산업 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 120여 명으로 영업 비밀·기술 유출 분쟁 대응팀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태평양도 신기술·신사업 대응 센터 산하에 글로벌 기술 분쟁 대응팀을 가동 중이다. 지식재산(IP)과 형사, 인사 노무, 컴플라이언스 분야 등 실무에 정통한 전문가 60여 명이 리스크 검토와 분쟁 시 승소 전략까지 자문에 응하고 있다.

율촌은 지식재산 분야 법률 자문 경험이 많은 변호사와 IT 기술 특허 전문가들이 모인 신산업IP팀이 기업에 자문을 제공 중이다. 율촌은 매년 100여건의 영업비밀 침해 사건을 해결해왔다.

세종은 산업 기술과 보안 문제 관련 분쟁 해결과 자문 경험을 축적한 IP 그룹 전문가와 형사 그룹, 디지털 포렌식 센터 등이 협업해 의뢰인에게 맞춤형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

화우는 법원·검찰·경찰·공정거래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 출신 변호사·변리사로 구성된 영업비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륙아주는 정보보안팀, 포렌식팀, 영업 비밀·산업 기술 분쟁 대응팀으로 구성된 산업정보유출방지센터를 중심으로 자문에 나서고 있다. 민간 기업의 주요 입사자와 재직자, 퇴직자까지 직급과 경력 등에 따른 기밀 관리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이런 로펌들의 영업 비밀·기술 유출 대응 전담 조직은 점점 커지는 분위기다. 그렇다보니 각자 전문성을 키우는 노력도 하고 있다.

지평도 영업 비밀·산업 기술·정보 보호팀을 ‘기술 유출·영업 비밀 침해 대응 센터’로 확대 개편하고, 디지털 포렌식 센터에도 검찰 출신 전문가를 영입했다. 바른도 영업 비밀 침해 대응팀을 ‘산업 기술 유출 대응 센터’로 확대 개편했다.

예상치 못한 기밀 유출 발생 시 기업들의 발 빠른 ‘사후 대처’를 돕는 법률 서비스에 집중하는 로펌도 있다. YK는 전국에 지역 분사무소 28곳을 두고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기업의 기술 유출 피해에 대해서도 초기 대응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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