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91] 진도 맹골도 군부무침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2024. 5. 2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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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껍질을 벗기고 세척 하는 주민(맹골도)

몇 년 전 이야기이다. 밤새 산모를 위한 긴 마른 미역을 만드느라 힘들었던 모양이다. 세상 모르고 곯아떨어졌다 눈을 떴다. 섬마을 아침은 쾌적함을 넘어 청아하다. 골목을 지나 바닷가로 나오니 주민 한 분이 바닷가에서 무엇을 세척하고 계셨다. 함지박에 넣고 치대더니, 바닷물에 다시 헹궜다. 거무튀튀한 껍데기가 벗겨지니 흰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벌레 같은 모양을 한 주인공은 군부였다. “군벗이라고 해요. 무쳐 놓으면 먹을 만하요”라며 어머니가 맛을 보라며 한 개를 입에 넣어주었다. 정말 식감과 맛이 먹을 만하다.

껍질을 벗기기 전 군부

‘지산어보’는 군부를 ‘귀배충’이라 적고, 속명으로 굼법이라 했다. 조간대 갯바위에 붙어 자라는 군부는 굼뜨게 움직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붕에 기와를 얹는 것처럼 여덟 개의 판이 겹쳐 있다. 군부는 우리나라 전 해역 갯바위에 서식하는 조간대 생물이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며 갯바위 표면 미세 조류를 섭식한다. 해녀들이 사용하는 빗창이나 칼 등을 이용해 갯바위에서 떼어낸다.

군부무침(여수 추도)

가까운 바다에서는 밥상에 올릴 만큼 큰 군부를 만나기 어렵다. 맹골도처럼 먼바다나 인적 없는 섬에 가야 좋은 군부를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여수 추도에서 도선 취항을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했다가 귀한 군부무침을 맛보았다. 진도군 독거도에서도 군부무침을 만났다. 역시 바다가 거칠고 인적이 드문 섬이다. 이런 곳에서는 군부나 고둥을 삶아서 반찬으로 올렸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바위틈이나 절벽 등에 붙어 자라기에 채취하는 것이 모험이다. 솥에 넣고 삶은 군부를 거친 솔을 사용하거나 빨래하듯 치대서 껍데기를 벗긴다. 그리고 양념을 해 무쳐 먹는다. 약간 딱딱한 전복 같다. 거북손이나 삿갓조개와 달리 군부는 채취와 손질이 어려워 오롯이 어민들 몫으로 남아 있다. 군부의 각 판이 겹쳐지면서 생긴 주름이 마치 섬 노인 삶의 흔적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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