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판 N번방', 텔레그램·디지털 성착취 판박이…'이것' 달랐다
새롭지만 만연한 '지인능욕' 딥페이크 유사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텔레그램, 수백개 방, 디지털 성착취.
흔히 'N번방'으로 통칭되는 사건들의 공통점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이른바 '서울대판 N번방' 역시 이 같은 디지털 성범죄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수사당국과 전문가들은 실제 N번방이나 박사방과는 결이 다른 범죄라고 진단한다. 피해자를 협박해 얻은 성착취물로 영리 활동을 벌였던 N번방 사건과 달리 성적 욕망 해소를 목적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수백개 텔레그램 방을 통한 디지털 성착취물 공유
2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텔레그램을 통해 서울대 동문 12명 등 수십명의 사진으로 불법 합성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로 박 모 씨(40·남)와 강 모 씨(31·남)를 지난달 11일과 이달 16일 각각 구속 송치했다. 또 이들이 제작한 음란물을 재유포하거나 자신의 지인을 상대로 불법 합성물을 제작·유포한 3명을 추가로 검거해 이 중 1명을 구속했다.
현재까지 피해자는 최소 61명. 가해자들은 여성들의 졸업사진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 등을 이용해 불법 합성물을 제작하면서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유포하는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에 따르면 주범 박 씨가 불법 합성물 유포를 목적으로 만든 텔레그램 방은 약 200개에 이른다. 실제 합성물이 유포된 대화방은 약 20개로 전해졌다. 박 씨는 경찰에 방마다 최대 50명 정도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최소 1000명이 그릇된 성적 욕망을 해소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번 사건이 2019년 문제가 된 N번방 사건에 비유되는 이유다.
N번방은 미성년자 등 일반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착취 영상을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판매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당시 닉네임 '갓갓'으로 활동한 문형욱 등이 방에 번호를 매겨 성착취물을 공유한 'N번방'과 '박사'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조주빈이 만든 '박사방' 모두 N번방으로 통칭된다.
◇성적 욕망 해소 목적의 지인 능욕…"새롭지만 만연한 범죄"
그러나 이번 사건이 N번방과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부분은 범죄 목적에 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관계자는 "박 모 씨 등 주범들이 불법 합성물로 얻은 수익은 없었다"며 "이들의 범행 목적은 영리가 아닌 '성적 욕망 해소'"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피해 여성들에게 협박이나 금전 요구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주범인 박 씨는 실제 속옷을 요구하다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이들이 "성적 욕망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선별해 받았다"며 "성향이 맞지 않은 대화를 하거나 대화를 많이 안 하면 강제 퇴장시켰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강압적으로 성착취물을 제작·판매해 돈을 벌고 그런 차원이 아니라면 N번방이랑 차이가 있고 '지인능욕'에 가까운 범죄로 보인다"면서도 "내집단에서 개인적 반감과 갈등 관계 때문에 지인을 능욕하는 범죄가 벌어지는데 어떤 대상을 피해자로 삼았느냐에 따라 지인능욕과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고학력자가 성에 관한 왜곡된 지향이 결합한 형태의 사건으로 보이며, 디지털 성범죄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정부의 정책적 관심이 부족해 보인다"며 "국정과제로 디지털 성범죄를 5대 폭력으로 규정한 만큼 이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인능욕은 지인의 사진을 통해 딥페이크(AI 기반 합성 이미지) 성착취물을 제작해 유포하는 범죄를 일컫는다. 최신 AI 기술을 기반으로 합성 사진이나 영상물 제작이 손쉽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최근 급증하고 있는 범죄 유형이다. 이번 사건도 일부 서울대 동문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선 이 같은 유형에 해당한다.
성범죄 전문 이은의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종류의 범죄지만 이미 만연한 범죄"라며 "범인이 잡혔고, 서울대라는 점 때문에 크게 조명받고 있지만, 지인능욕방은 20~30대 사이에서 이미 큰 문제"라고 짚었다.
이 같은 딥페이크 범죄가 급증하자 관련 처벌법도 2020년 도입됐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에 따르면 반포할 목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허위 영상물을 제작하거나 퍼뜨리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 영리 목적일 경우 7년 이하 징역으로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실제로 해당 처벌 조항이 적용되기 어려워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사 기관이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반포 목적'으로 제작됐는지 입증하는 일이 쉽지 않은 탓이다.
이 변호사는 "지인능욕과 관련한 문제가 지속되고 있지만 처벌이 녹록지 않다"며 "AI 기술 대두와 함께 사진 한장으로 사진과 영상 합성이 무료로 제공되는 시대인 만큼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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