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국가주의 시대…기술주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양재찬 편집인 2024. 5. 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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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양재찬의 프리즘
‘사이버 영토 전쟁’ 벌이는 세계
日 민관 공조, ‘네이버 밀어내기’
라인 사태, 한국 기업 차별 문제
정부와 기업, 정치권이 공조해
해외 진출 기업 적극 보호 필요
정부와 정치권은 라인 사태를 일개 기업의 경영권 문제로 봐선 안 된다. AI 국가주의 시대의 경제안보 이슈로 삼고 기술주권 보호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것이다.[사진=연합뉴스]

세계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데이터 주권' 보호를 명분으로 장벽을 세우고 있다. 이른바 'AI 국가주의 시대'가 도래하며 사이버 영토 전쟁을 벌이는 모습이다. 미국은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을 자국에서 퇴출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일본은 네이버가 구축한 일본의 '국민 메신저' 라인의 경영에서 손을 놓기를 압박하고 나섰다.

네이버의 라인야후 재팬 지분 정리를 요구한 일본 정부의 표면적 이유는 개인정보 유출이다. 일본 정부는 행정지도에 '지분 매각'이라는 직접적인 용어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네이버가 50% 출자하고 있는 자본 관계 재검토' 문구는 외국기업 네이버의 지분을 자국기업 소프트뱅크에 넘기라는 압박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라인야후는 유일한 한국인을 이사회에서 제외했다. 기술적 협력 관계인 네이버로부터 독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소프트뱅크도 네이버와 지분 문제를 놓고 협상 중이라고 확인했다. 일본의 민관民官이 역할을 분담하며 공조해 '네이버 밀어내기'에 나선 형국이다.

이와 달리 한국은 정부ㆍ기업ㆍ정치권이 제각각이었다. 정부는 사태 초기 상황을 잘못 판단한 모습이었다. 자국 기업을 보호해야 할 외교부는 사태를 보도한 언론을 나무랐다. 통상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나서지 않았다. 현 정부의 외교 성과로 내세우는 한일 관계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수수방관했다는 인상을 줬다.

행정지도 대상에 오른 기업인 네이버도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일본 정부의 눈치를 살펴야 했겠지만, 한국 정부와의 정보 공유와 의사소통에도 소극적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대일 굴종 외교"라고 비판했다. 국민 반감이 커지고, 반일反日 정서를 자극했다. 일이 커지자 뒤늦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라인 지분 매각 압박은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외교부와 과기부가 외교정책협의회를 구성했다. 대통령실이 연이틀 나서 "우리 기업의 의사에 반하는 부당한 조치에 단호하게 대응할 것" "라인야후 보고서에 지분 매각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일본 정부가 "행정지도는 위탁처(네이버) 관리가 중요하다"며 한발 뺐다. 이로써 라인 사태는 일단 휴전에 들어간 모습이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들은 3월 초 일본 총무성이 라인야후에 행정지도를 내린 이후 두달여 동안 벌어진 일을 복기하며, 라인 사태 해결책과 유사 사태 방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라인 사태 해결의 기본 전제는 우리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이 문제는 일개 민간 기업이 직면한 일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기업에 대한 차별 문제이자 국제규범 위배 소지가 있는 통상 이슈다. 정부가 일본에 특별대우를 요구할 필요도 없지만, 부당한 피해를 당하는 것을 방관해선 안 된다. 해외진출 기업을 적극 보호하는 바람막이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제2, 제3의 라인 사태 발발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망가(만화) 종주국' 위치를 지키려드는 일본으로선 자국 웹툰시장 점유율 1ㆍ2위 기업인 카카오픽코마와 네이버웹툰을 다음 공략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 기업이 일본에서 불이익을 받는데 한국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을 보고 다른 나라가 따라할 소지도 있다. 온라인 플랫폼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선 보다 철저한 대응책을 세워 실행하면 될 일이다. 이를 두고 외국기업의 지분 매각을 압박하는 일본의 반시장주의적 행태는 외교ㆍ통상 카드로 대응해야 한다.

야당이 정치 이슈화해 반일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감정적 반일 몰이는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한일 관계라는 특수성과 국민정서에 기대어 지나치게 자극하면 되레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과 글로벌 경영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중장기 비전과 전략을 짜고 노사 관계까지 얽힌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게 된다.

라인야후는 우리 기업의 원천기술이 적용되고 공들여 키워온 글로벌 플랫폼이다.[사진=뉴시스]

라인야후는 우리 기업의 원천기술이 적용되고 공들여 키워온 글로벌 플랫폼이다. 일본은 물론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에서도 점유율이 높다. 세계 각국은 반도체, 정보기술(IT),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치열한 패권 경쟁을 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라인 사태를 일개 기업의 경영권 문제가 아닌 AI 국가주의 시대의 경제안보 이슈로 기술주권 보호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외국 기업들이 진출해 영업하기 어려운 배타적 시장으로 통한다.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제조업 분야에서 공략하지 못한 일본 시장에 뿌리내린 대표적 기업이 네이버다. IT와 온라인 플랫폼 등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지닌 경쟁력을 살려나가는 산업 및 경제안보 전략이 요구된다. 정부와 기업, 정치권이 공조해 국가와 기업 이익을 극대화하는 해법을 강구하자.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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