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든 다큐들, 국제영화제 레드카펫 밟았다
JTBC, 국제신문 등 잇따라 진기록
기자가 제작과정 주도하거나 참여
제작비 2000만원으로 만든 다큐멘터리가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연달아 큰 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지역 신문사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무려’ 칸 국제영화제에서 레드카펫을 밟는 진기록을 남겼다. 공통점은 모두 기자가 제작하거나 제작을 총괄한 작품이란 점이다.
기자가 다큐 제작에 뛰어든 역사는 오래됐지만, 최근 국제무대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호평을 받는 사례들이 이어지며 새삼 이목을 끌고 있다. 언론과 미디어 업계 전반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국 중요한 건 ‘콘텐츠’이고, 기자들이 콘텐츠 기획자이자 제작자로서 역량을 발휘할 장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남긴다.
JTBC 다큐멘터리 ‘딥 크리미널’은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미국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TV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같은 달 2024 뉴욕페스티벌 TV&필름 어워즈에선 다큐 부문 동상을 수상했다. 앞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선정한 2023년 10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뉴미디어부문도 받았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의 진화에 모두가 환호할 때, 범죄 악용 가능성 등 어두운 이면에 주목한 다큐는 14년차 기자 이윤석의 감독 데뷔작이다.
이 기자는 모바일팀에서 일하던 지난해 1월, “앞으로 다큐가 중요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라 보고 한국언론진흥재단 다큐 제작 지원사업에 응모, 제작비 2000만원으로 3~4개월 만에 데뷔작을 완성했다. “대형 다큐 예고편 제작비 정도”의 비용으로, 모바일팀에서 ‘본업’을 하는 동시에 이뤄낸 성과다. 엔딩크레딧에 등장하는 이름은 함께 취재한 이선화·유요한 기자를 포함해 13명이 전부다.
이 기자는 “기존 다큐 문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와 “후배 한 명 한 명의 뛰어난 능력”을 비결로 꼽으면서 “타이밍이 좋았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사에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인력이었지만, 덕분에 기동성이 뛰어나 “AI 범죄를 다룬 세계 1호 다큐”를 목표로 빠르게 기획부터 제작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기자의 장점인 “빠른 추진력과 판단력”이 다큐 제작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올해 초 JTBC 탐사보도 콘텐트 전문 조직 ‘스튜디오 뉴비’ 탐사팀으로 자리를 옮겨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뉴스콘텐트부문(기존 보도부문) 산하에 있는 뉴비는 말하자면 보도제작국 성격의 조직으로, 다큐를 포함한 OTT용 콘텐츠 제작을 전담한다. 기자들이 취재해 ‘뉴스룸’에 보도된 아이템을 확장·발전시켜 각각의 플랫폼에 맞는 콘텐츠로 만들거나, 아예 OTT 오리지널을 제작해 공급하기도 한다. 지난해 웨이브(wavve) 오리지널로 선보인 다큐 ‘악인취재기’는 웨이브는 물론 이를 짧게 편집해 내보낸 유튜브에서도 크게 화제를 모으며 성공 가능성을 보였다. 악인취재기는 보도부문이 OTT에 진출한 첫 사례다.
뉴비가 제작한 두 번째 웨이브 오리지널 ‘모든패밀리’는 성소수자(LGBT)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다음 달 공개를 앞두고 있다. 손용석 JTBC 부국장은 “플랫폼을 다양하게 넓히면서 다양한 아이템을 탐사할 수 있게 됐고 수익원도 다양해지고 있다”면서 “광고 개념으로 접근하면 TV에서 다큐의 가성비는 떨어지지만, OTT에선 소비 시간에 따라 (수익이) 다르기 때문에 탐사뿐 아니라 호흡이 긴 뉴스도 경쟁력이 있고, 가성비 측면에서도 오히려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지역 일간지 국제신문이 신문사로는 이례적으로 매년 다큐를 제작하는 것도 좋은 콘텐츠는 플랫폼을 뛰어넘는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제신문은 “언론기업은 결국 콘텐츠화가 정답”이란 생각에 따라 2020년부터 자체 기획기사 중 선별해 영상화하는 작업을 해왔고, 네 번째 작품인 ‘영화 청년, 동호’로 칸 영화제까지 진출했다. 동호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월드 프리미어 상영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앞서 부마민주항쟁을 다룬 ‘10월의 이름들’은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다큐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40년사를 담은 ‘죽어도 자이언츠’는 2022년 전국 60여개 상영관에서 개봉하기도 했다. 활자로 보도된 국제신문의 기사가 다큐로 만들어져 전국과 세계의 관객을 만난 셈이다.
다큐 제작을 총괄하는 장세훈 국제신문 디지털부문장은 “언론사의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디어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원본 콘텐츠가 있다면 크게 문제가 안 된다는 생각에 다큐로 눈길을 돌렸고, 앞으로 이 저작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사실 우리나라 언론기업이 콘텐츠화냐 플랫폼화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 플랫폼을 키울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역 언론 입장에선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고, 콘텐츠의 역량화에 집중한 게 좋은 기회를 만들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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