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칼럼] 대한민국 상대로 독립운동하는 사람들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4. 5. 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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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이 의대 증원 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각하한 이후 의대생 단체인 의대협이 성명을 냈다.

"집행정지 기각은 대한민국의 법리가 검찰 독재 정부에 의해 무너져 내린 것을 여실히 보여준." 이보다 앞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신청을 기각한 판사를 상대로 "대법관 승진 회유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기상천외한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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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행정 이어 법원도 무시
모두 다 부정하면 뭐가 남나
비판·승복 양립이 그리 어렵나

서울고등법원이 의대 증원 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각하한 이후 의대생 단체인 의대협이 성명을 냈다. "집행정지 기각은 대한민국의 법리가 검찰 독재 정부에 의해 무너져 내린 것을 여실히 보여준…." 이보다 앞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신청을 기각한 판사를 상대로 "대법관 승진 회유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기상천외한 의혹을 제기했다.

사회적 논란이 있는 사안의 판결에 있어 패소한 측이 사법부를 비방하는 습관이 굳어진 지 오래다. 그래도 '승진 회유'는 처음 들어본다. '법리가 정부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는 주장은 국가 시스템으로서 사법부, 그리고 삼권분립을 부정한다.

의사들은 행정부를 적으로 대한 지 오래이고 야당(입법부)의 '국회 내 의료개혁 논의' 제안을 들은 척도 안 했다. 대한민국은 입법·행정·사법의 세 기둥으로 대표되고 기율된다. 그 세 기둥을 부정하면 대한민국이라는 채반에는 모래도 남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가 발급하는 의사면허증 가치를 지키겠다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나이로는 원로에 속할 보수 유튜버가 서울고법 기각 결정 이후 올린 영상의 제목은 '이상한 법원 결정!'이다. 섬네일에는 '의대생 학습권 침해 인정하면서도 윤석열 손들어준 재판!'이라고 적었다. 서울고법은 의대 재학생의 가처분신청 자격을 인정했으나 "필수·지역의료 회복 등을 위한 필수 전제인 의대 증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보인다"며 집행정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행정소송법 제28조는 청구 이유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처분 취소가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될 때 법원이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판결이 이상한가?

의대 사태 3개월은 한국에서 '보수주의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보수 가치와 동떨어진 말을 하며 살아가는지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그들도 '독립군'이다. 3개월 내내 정부를 공격하더니 이번에는 사법부를 공격한다. '수습 불능' '그래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마치 '절대 돌아오지 말라'고 다짐을 두는 것 같다. 보수의 덕목인 국가 권위,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없다. 입만 열면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대한민국의 요체인 정부와 사법 체제를 업신여긴다. 보수를 기득권 옹호와 헷갈리는 듯도 하다. 힘없고 돈 없는 집단을 위해 저렇게 애쓴 적이 있었나.

사회면 편집자로서 의대 증원 사태 세 달 동안 신문에 쓰고 싶었지만 듣지 못해 기사화하지 못한 사례가 몇 가지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파업·휴학의 당부를 놓고 자체 논쟁을 펼친 사례를 듣지 못했다. 파업 전공의나 휴학 의대생을 자녀로 둔 부모가 "그쯤 했으면 됐다. 이제 그만하라"고 복귀를 설득한 사례도 알지 못한다. 의대 증원 반대론자가 "난 여전히 반대지만 더 큰 대의를 위해 물러설 때"라고 자제를 호소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이 나라에서 가장 희귀한 것은 성찰하는 사람, 한발 물러서는 사람이다.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의무, 애국심, 엘리트의 자존심이 유의미한 가치로 작동하는 사회에선 지금 보는 일사불란한 파업과 휴학, 일방적 응원은 상상할 수 없다. 성찰하는 사람이 희소할수록 사회는 위험해진다. 보수주의자라면 이 대목에서 '위험 사회'를 감지하고 절망을 느껴야 한다. 쌤통이라는 듯 '그래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빈정댈 게 아니라.

독립운동은 조국이 해방되지 않았을 때 하는 것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반체제운동이 된다. 비판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비판과 승복을 양립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어렵나.

[노원명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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