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잡아들여 사막에 ‘덩그러니’···강제 이주 뒷배에는 유럽 자금줄이

윤기은 기자 2024. 5. 2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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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16일(현지시간) 사하라 이남 국가 이주민들이 리비아 알아사 사막 지역에 모여 있다. 이들에 따르면 튀니지 당국은 물과 숙소 없이 이주민들을 이곳으로 옮겼다. AFP연합뉴스

유럽연합(EU)과 유럽 일부 국가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던 이주민들을 잡아 사막이나 구금시설로 강제 이주시킨 북아프리카 국가에 금전적·물적 지원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북아프리카 국가와 연관된 보안군에 붙잡힌 이주민들은 물조차 구할 수 없는 황량한 지역으로 옮겨지거나, 인신매매·폭력 등 피해를 보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유럽이 인권침해에 가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 르몽드, 슈피겔 등 8개 유럽·미국 언론사 공동 취재팀은 20일(현지시간) 유럽 국가들이 주로 흑인 이주민을 사막이나 외딴 지역에 조직적으로 “버리는” 나라들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지중해에서 붙잡힌 이주민들은 모로코, 모리타니, 튀니지 등 경비대에 의해 사하라 사막으로 옮겨졌다.

취재팀이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EU는 모로코의 준군사조직에 자금을 건넸다. EU의 자금을 지원받은 군사조직은 라바트, 페스, 탕헤르, 탄탄 등 지역에서 난민들을 차량에 태워 강제 이주시켰다.

튀니지 경찰이 이주민을 단속할 때 사용한 차량은 이탈리아와 독일 정부가 기증한 차량 모델과 일치했다. 스페인 정부도 사막 강제 이주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취재팀은 전했다. 스페인 정부는 모리타니에 이주민 수송 차량, 구금 센터 자금 등을 지원했다.

취재팀은 EU가 아프리카 지역 경제 성장과 이주 제한을 위해 만든 ‘EU 아프리카 긴급 신탁기금’을 통해 2015년부터 6년간 모로코, 모리타니, 튀니지에 최소 4억유로(약 5925억원)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튀니지에 1억500만유로(약 1555억원)를, 지난 2월에는 모리타니에 2억1000만유로(약 3111억원)를 지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중해와 인접한 이들 국가의 해안 도시는 이주민들이 유럽으로 가는 소형보트를 타기 위해 모이는 거점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이주민 관리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할 때 해당 프로젝트가 인권을 보호하는지 여부를 평가하지 않는다고 취재팀에 밝혔다. EU는 자체 법률과 국제 조약에 따라 이들이 지원하는 자금이 인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지도. 구글맵스 갈무리

북아프리카에서 보안군이나 경찰에 붙잡힌 난민들은 폭행을 당하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했다.

카메룬 출신 이주민 A씨는 지난해 9월 튀니지의 한 해안가에서 소형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다 튀니지 방위군 순찰선에 발각돼 붙잡혔다. 튀니지 항구로 옮겨진 난민들은 무장 경비원에 의해 구타를 당한 뒤 버스에 실렸다. 이들은 알제리와 국경을 맞댄 튀니지 서부의 한 협곡으로 옮겨졌고, 튀니지 경비대는 “국경을 넘어가라”며 경고 사격을 했다.

같은 나라 출신 B씨도 지난해 11월 튀니지 해안 도시 스팍스에서 붙잡힌 후 리비아의 한 구금시설로 옮겨졌다. 감금 기간에는 목욕할 수 없었고, 식사는 하루 한 끼가 전부였다. B씨는 그의 어머니가 구금 시설 측에 1000달러(약 136만원)를 보낸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난민 세 명이 구금시설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유럽 전역에서 불법 이민에 대한 반발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이 이민을 억제하기 위해 이러한 작전에 가담했다고 전했다.

다만 EU나 앞서 언급된 유럽, 북아프리카 국가는 난민을 사막으로 옮기거나 이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데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마리로르 바질리앵갱슈 리옹3대 법학과 교수는 “유럽은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이 일을 제3국에 하청을 주고 있다”며 “하지만 국제법상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영국 의회가 지난달 통과시킨 ‘르완다 안전법’이 시행될 경우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법에는 영국 정부가 불법 이주민을 아프리카 르완다로 강제 이송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국제앰네스티, 리버티, ‘고문으로부터의 자유’ 등 인권단체는 “이 부끄러운 법안은 헌법과 국제법을 짓밟고, 고문 생존자를 비롯한 난민들을 ‘르완다에서의 불안전한 미래’라는 위험에 빠뜨린다”고 밝힌 바 있다.


☞ 영국, 르완다로 난민 강제 이송 확정…인권단체 “비인도적”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404232117025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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