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광주·전남 지방의원들, 尹참석 국가행사서 ‘항의 퍼포먼스’ 논란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4. 5. 2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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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행사 주최 측이면서…팻말시위·썰물퇴장
두 개의 시선…“낯내기 정치쇼” vs “오죽했으면”
일각 “식상한 비즈니스정치에 지쳐…이제 그만”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난형난제(難兄難弟)'. 요즘 광주·전남 지역사회 일각에서 광주시의회와 전남도의회 의원을 향해 화를 삭이며 점잖게 내뱉는 말이다. 광주·전남 지방의원들이 행사 주최 측이나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행사에서 망신주기식 시위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일부 광주시의원들이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 도중 손팻말 시위를 했다. 앞서 지난해 가을에는 목포 전국체육대회에 참석한 전남도의원들이 대거 개막식 중간 자리를 비우면서 부적절한 처신 논란에 휩싸였다.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4주년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는 도중 광주시의회 5·18특위 소속 시의원들이 '5·18 헌법수록' 글씨가 적힌 손팻말을 펼쳐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오전 윤 대통령이 기념사를 시작하자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소속 의원 8명은 윤 대통령을 향해 '손팻말 침묵시위'를 벌였다. 시의원들이 '5·18정신 헌법전문수록'이라고 적힌 어른얼굴만 한 크기의 흰 종이를 윤 대통령이 볼 수 있도록 번쩍 들어 올린 것이다. 이를 본 대통령실 경호처 관계자들이 급히 달려와 제지하려 하자, 오월 유가족 등 행사 참석자들이 막아서면서 큰 소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손팻말을 들고 있던 광주시의원들은 기념사가 끝나고 뒤를 돌아 참석한 시민들에게 인사했고, 시민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들 의원들의 퍼포먼스성 돌발 시위는 윤 대통령이 5·18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 의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에는 전남 목포에서 열린 제104회 전국체전 개막식에서 전남도의회 의원들 다수가 윤 대통령이 기념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자리를 떠 입살에 올랐다. 이날 행사에는 윤 대통령 부부와 정부 인사는 물론 전국 17개 시·도 대표단, 18개 국가 해외동포 선수단, 전남도민 등 1만50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개회식 1시간여 전에 윤 대통령 등 VIP석 인근 지정 좌석에 앉았다.

지난해 10월 13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종합경기장에서 제104회 전국체전 개막식 진행이 한창인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식사를 하기 직전 전남도의원들이 대거 떠나 자리가 텅 비어있다. ⓒ뉴시스

이날 참석 전남도의원 중 2명만 끝까지 자리를 지켰을 뿐 30여명의 도의원들은 썰물처럼 행사장을 빠져 나갔다. 도의회 공용버스 시간 때문에 일찍 자리를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해명없이 함구로 일관했고, 결국 김영록 전남지사가 나흘 뒤 대신 사과했다. 이들 의원들 대부분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전남도의회 전체 도의원 61명 중 57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대통령이 참석한 국가행사에서 일부 광주전남 지방의원들이 보여준 무언의 항의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우선 대통령과의 소통이 꽉 막힌 상태에서 광주시의원들의 피켓 소통 방식은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다는 긍정적 관점이 있다. 광주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한민국 사회 전반이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있는데 유독 대통령 앞에서만 엄숙하고 침묵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강요는 시대에 뒤떨어진 처사"라며 "오죽했으면 피켓을 들었겠느냐"고 감쌌다. 

5·18특위 위원장을 맡은 정다은 광주시의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통령께서 '5·18 정신 헌법전문수록'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이란 걱정 때문에 동료의원들과 손팻말 침묵시위를 준비했다"며 "실제 기념사에서도 관련 언급이 없어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어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참석한 첫 국가기념식에서 ​오월정신은 헌법정신 그 자체라고 말했으나 이후 5·18 관련 예산들을 줄줄이 삭감했다"며 "공약을 지키고 광주를 우롱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팻말을 준비했다"고 윤 대통령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부정적 시각도 팽배하다. 광주시민 김 아무개(58)씨는 "정부 주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자리는 당시 산화한 열사를 추모하고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자리인데 거기서 그런 의사(5·18정신 헌법전문 수록)를 표현하고 그런 논쟁을 할 자리도 아니었다"면서 "그런 식으로 도발하고 시비 걸고 정치 문제화하고 이런 것 안 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제철 만난듯 불쑥불쑥 나타나는 식상한 비즈니스 정치에 지친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김씨의 얘기다. 

"일부 정치인들의 경우 당적이 다른 국가 최고지도자에게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유권자들이 소신 있는 '개념 정치인'으로 믿어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이익을 사수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은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이다. 외부의 적이 분명해지면, 내부의 크고 작은 이견이 잦아든다. 자신들의 모든 행위도 정당화된다. 물론 선거 치르는 것도 '누워서 떡먹기'처럼 쉬워진다. 대신 공정과 상식은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지역 맹주인 더불어민주당이 광주전남 시도의회 다수를 점령하는 한 이런 모습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그림도 지나치게 자주 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하물며 의회 내에선 1년 내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다가 기회를 엿봐 물 만난 듯 존재감을 드러내는 의원들의 급발진이라면 쌍수를 들고 거부할 일이다. 자신들을 '정의의 투사' 쯤으로 여기는데, 민생을 걱정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끼어들 틈이 있을까. 인공지능(AI)과 4차 산업혁명이 운위된 지 오래인데 변함없는 지역 정치인들의 상상력 빈곤이 딱해 보인다. 이제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입장에서 들 때와 날 때를 구분해 처신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싶다. 지역 정치권의 각성과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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