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웃기는, 엄청 야한 만화를 희망함…<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 들개이빨

손고운 기자 2024. 5. 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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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21WRITERS 들개이빨②] 일상 속 사건에 살을 더하고 빼고
웹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 속 한 장면. 들개이빨 제공

◆<먹는 존재> <족하>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 들개이빨 작가의 이야기가 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여자들이 그냥 다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519.html)◆

보편성과 고유성 사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부내죽)>에서 주인공 들빨개빨(여성)과 뮤지션(여성)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렸는데, 이 과정이 ‘동성애가 특이한 것이 아니라 그냥 한 인간에 대한 사랑일 뿐’이란 걸 잘 보여줘서 좋았다는 평이 있더라.

“영광이다. 이게 참 어려운 지점 같다. 뭐냐면 나한테는 ‘어떤 특정한 성별을 좋아한다’ 이런 건 아무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한테 어떤 매력을 느낀다는데 그게 뭐 대수인가. 그래서 ‘성소수자’란 식으로 정상사회에서 분리하려는 시도가 나는 굉장히 희한하게 느껴진다. ‘이게 과연 그렇게 특별한 일인가, 성소수자라는 만화 카테고리에 들어가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런 걱정도 있다. 그렇다고 이걸 또 ‘보편의 얘기’라고 하기엔 레즈비언 등 집단이 가진 고유한 특징이 없진 않고, 또 내가 그 집단 일반과 문화를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자칫 이들을 대표하는 위치에 서서 말하는 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연재 반응 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나.

“자신이 레즈비언인데 그 사실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독자 한 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분이 내 만화를 보면서 ‘자살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 얘길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한편으론 이 정도까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내죽>은 어떻게 시작했나.

“내가 실제로 여성을 좋아한 경험은 나한테 굉장히 큰 사건이었고, 그 사람을 좋아하면서 겪었던 일이 굉장히 재밌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든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냥 일상에서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으면 그걸 몇 번이고 곱씹으면서 편집한다. 살을 붙이고 빼고 하는 식으로.”

—여자 뮤지션과 사랑에 빠지면서 주인공이 ‘남자친구 리자드’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장면이 나온다. 독자들 반응을 보니 남자친구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 복합적 감정을 느끼거나 작가님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인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더라.

“내가 도마뱀을 사귀진 않았다.(웃음) 그렇지만 헤어진 남자친구가 파충류를 좋아했기에 그걸 약간 변형시켜 그렸다. 실제로 그 당시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고, 내가 ‘여자를,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고 선언했지만 끝까지 놔주지 않았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그렸다.”

—계속 본인 이야기를 쓰는 건가.

“<먹는 존재>를 하고 나서 약간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랑 분리된 캐릭터를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굉장히 강했다. 그런데 분리하려 하니 큰 문제가 생기더라. 나와 캐릭터 간 거리가 멀수록 재미가 없어졌다. 나도 몰입이 안 되고.”

웹툰 <족하> 속 한 장면. 들개이빨 제공

본인 이야기를 그릴 수밖에 없는 이유

—자신의 만화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뭔가.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 이유는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성실하게 일해본 적이 없어서. 하루에 10∼11시간? 주 2회를 연재하니 한 주에 거의 100시간 일한 적도 있고. 물론 노동권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게 표준이 되면 절대 안 된다.(웃음) 하지만 나는 그게 즐거워서 지금이 그렇게 쏟아내야 할 타이밍 같다. 굉장히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

—팬이 많다. 독자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고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해보고 싶나.

“모쪼록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 보내시고, 가끔 심심할 때 제 만화 봐주시면 더 바랄 게 없다. 늘 깊이 감사드린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내 일상과 망상, 그때그때의 관심사를 뒤섞은 만화를 그리게 될 것 같다. 당장 구체적인 소재나 장르가 떠오르진 않지만 그저 ‘엄청 흥미진진한 만화, 엄청 야한 만화, 엄청 웃기는 만화’를 그리길 희망하고 있다.”

에필로그-지금 당장 그린 걸 공개하시라

2024년 5월3일 서울 자택에서 만난 들개이빨 작가. 김진수 기자

작가 들개이빨은 ‘웹툰 작가’가 되는 선명한 방법을 제시한다.

“요즘은 굉장히 명확하다. 나를 노출할 수 있는 창구가 사방에 활짝 열려 있다. 만화가가 되고 싶으면 만화를 무조건 그려서 올리시라. 대중에 바로 공개하시라. 계속, 계속, 계속, 될 때까지. 나도 예전에 블로그, 학내 게시판 이런 데다 계속 일상 같은 걸 올렸다. 올리면 거기에 대한 반응이 어떤 형식으로든 온다. 그 피드백을 보면 또 내 안에 변화가 생기고 그 과정을 계속 거치는 거다.”

—피드백이 두려울 거 같다.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나도 이건 이겨내는 게 아니다. 어떤 피드백은 보면 하루 종일 기분 나쁘고 그렇다. ‘이 세계관을 책임지고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좀 재미없는 것 같다’ 이런 느낌으로 만화를 그릴 땐 정말 지옥이다. 근데 어쨌든 그런 걸 견뎌내고 완결을 짓는 게 정말 중요한 경험이다.”

—어떻게 견뎌내나.

“방법이 없다. 그냥 루틴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계속 매일매일 습관처럼 만화를 그리면 아무리 재미없어도 그래도 흘러가게 되니까.”

—‘어린 시절 이런 걸 알았다면’ 하는 게 있나.

“좀더 많은 작품을 최대한 성실하게 봤다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지만 늘 재밌는 작품이 정말 많다. 일이 되면 만화를 전적으로 오락적으로만 즐길 수 없다. 오락으로 즐길 수 있을 때가 가장 흡수율이 좋을 때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한겨레21이 사랑한 웹툰 작가’ 21명을 인터뷰한 ‘21 라이터스 ④’는 한겨레 네이버스토어에서 낱권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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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목록-여자들의 매콤한 세계

<먹는 존재> 2013년 12월~2016년 4월 레진코믹스에 연재. 2014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 2015년 안영미 주연 웹드라마로 제작. 문학동네 출판.

사장에게 굴을 던져 백수가 되고, 마성의 추남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유양의 방황기.

<족하> 여성생활미디어 핀치에 연재. 위즈덤하우스 출판.

비혼주의자 고모의 조카 관찰기.

<홍녀>2018년 1월∼2022년 3월 코미코에 연재.

수컷 생물을 재활용하는 초능력을 가진 중년 여성 이야기.

<나의 먹이> 2022년 3월 콜라주 펴냄.

들개이빨 작가의 에세이집.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 2023년 5월∼현재 카카오웹툰에 연재. 2023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

남자와 10년째 연애하던 만화가가 우연히 만난 여성 뮤지션에게 반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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